오래 전에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
1980년대 초에 프랑스의 ‘리베라시옹’ 지가 창간 기념 특집으로 부록을 꾸미면서 각국의 400여 문인들에게 던진 앙케이트의 내용이다.
나중에 지상에 발표된 앙케이트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방귀깨나 끼고 산다는, 존경받을 만한, 당대의 저명 문인들이 문학을 하는 이유가 예상했던 만큼 그렇게 고상하거나 깊이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등등 상당수 문인들이 아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문학을 한다고 답하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 알량한 이유로 문학에 임하면서 그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떳떳이 밝히는가 싶어 처음에는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쪽이 외려 더 솔직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실은 나 역시 형이상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알량한 이유로 처음 문학을 시작했다.
내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살다 가는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자주 부닥뜨리는 질문 중 하나다.
그때마다 나는 제법 그럴싸한 명분을 달아 내가 왜 문학을 하는지를 밝히곤 한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것은 질문에 대비하여 뒤늦게 정리해서 마련한 답변일 뿐, 실은 맨 처음의 그 생각, 내 존재 증명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찾고 싶다는 그 욕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우선, 나는 고백하기 위해서 문학을 한다.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해 고백성사하는 종교적 고백만이 고백은 아니다.
문학적 고백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해서 죄와 허물뿐만 아니라 열등감, 상처와 장애, 가난, 슬픔과 외로움, 수치심, 통증 등등에 대한 표현 모두를 포괄한다.
나는 낯선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거나 학년 초에 새내기 학생들을 맞는 첫 시간이면 내 어눌한 말주변과 신체적 결함 때문에 혹시라도 실수하고 망신당할까봐 무척 긴장하고 위축된다.
그래서 내 구강 안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사실은 내가 전면의치를 끼고 있다는 점을 대뜸 고백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곤 한다.
문학의 제단 위에 아까운 이빨을 몽땅 제물로 바친 나의 말실수를 비웃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청중들 사이에 웃음이 터진다.
비로소 나는 내 신체적 결함에서 비롯된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진다.
빌어먹을 틀니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을 받아 나는 그 틀니를 다스리는 주인이 된다.
약점을 일찌감치 솔직하게 고백해버린 나를 사람들은 우호적으로 너그럽게 대한다.
전투 중에 총상을 입은 병사가 목청껏 군가를 부른다. 낙반 사고로 막장 안에 갇힌 광부가 신심을 다해 찬송가를 부른다.
고초 당초보다 매운 된시집살이에 시달리는 며느리가 밭일을 하면서 시어미의 흉을 담아 농요나 부요(婦謠)를 읊조린다.
품꾼들이 깊은 우물을 파면서 흥겨운 노랫가락에 동작을 맞추어 힘든 노동을 견딘다. 이 모두가 고백인 셈이다.
노래 형식에 의탁해서 자신의 아프고 두렵고 서럽고 고단한 처지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억압기제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고백의 일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지극한 상실감과 절망은 곧잘 통곡으로 표현된다.
울음의 형식을 빌려 감정을 고백함으로써 슬픔의 근저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차마 못 당할 억울한 꼴을 당한 사람이 남몰래 일기를 쓴다.
원한과 분노를 글로 고백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보복보다는 자기 자신을 비참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안간힘이다.
문학이란 원원이 자기 구원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가 작품을 빙자해서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호소할 때 일차적으로 작가 자신이 해방되고 구원받는다.
만일 그 고백과 호소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독자들이 생긴다면 작가 개인의 구원은 이차적으로 다수의 타인의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데뷔작이자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은 이를테면 나 자신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고백문과도 같은 소설이다.
그만큼 사소설적인 요소가 대폭 수용된 작품이다.
군복무 중 갑작스레 부친상을 당한 사병이 곤궁한 형편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가족들을 도울 길이 없어 병영 안에서 탈영을 꿈꾸는 암담한 이야기다. 그 사병은 바로 나 자신이나 다름없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지독한 절망과 분노는 나 혼자서만 속에다 담아두고 있으면 큰 고질병이 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붙잡고 내 속을 죄다 털어놓지 않으면 제 명대로 못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쩌다 문학이란 수단을 붙잡게 되었을 때 얼씨구나 하고 맨 먼저 고백한 것이 바로 군대 시절의 내 신산스런 체험이었다.
다음, 나는 가출을 위해 문학을 한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가출을 도모하기 위해 문학을 시작했고, 또한 문학이란 수단을 통해 여태껏 수많은 가출을 경험해 왔다.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은 나에게 늘 불평 불만과 실망만을 안겨주곤 했다. 가정도, 학교도, 고향 동네도 그랬다.
어릴 적부터 다닌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도 내게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되지 못했다.
내가 꿈꾸는 이상 세계는 아직까지 내가 밟지 못한 미지의 땅, 걷지 못한 어느 길, 하지 못한 어떤 일 쪽에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예감 때문에 나는 늘 초조하고 뭔가에 늘 갈급했다.
밑빠진 독과도 같은 내 영혼의 빈그릇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직 가출만이 내게 허용된 유일한 수단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믿고 있었다.
내 가출의 역사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어렵게 장만해서 정을 붙이고 살았던 우리 집이 무허가 판잣집이란 이유로 시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를 당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충격으로 말미암아 내 소년 시절의 행복은 순식간에 박살나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턱없이 조숙해져서 우리 집을 무참히 허물어뜨린 세상과 심각하게 불화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꾸며 최초의 가출길에 오른 이래 해마다 가출 버릇을 되풀이하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잡아 불화의 대상들과 그럭저럭 화해하고 가출벽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그처럼 어렵사리 세상과 화해를 이룬 후에도 가출에 대한 질긴 욕구는 끊이지 않았다.
몸은 이미 어른이 되었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철부지로 남아 집을 뛰쳐나가 발탄강아지처럼 바깥세상을 제멋대로 싸다니고 싶은 충동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징집 연령 미달인 나이로 공군에 자원 입대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가출의 일환인 셈이었다.
제대 후에 시작된 초등학교 교사 생활도 내 끈질긴 가출 욕구를 잠재우진 못했다.
밤마다 내 방문 앞에 와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내 이름을 불러대는 미지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깜짝 놀라 문을 열어보면 밖엔 아무도 없었다.
나를 바깥세상으로 불러내려고 누군가 자꾸만 꼬드기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는 나날들이었다.
그렇다고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처지에 얼씨구나 하고 그 부르는 소리에 덥석 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무렵 가출 대신 들이기 시작한 새로운 버릇이 바로 무전여행이었다. 방학이 되기만 기다리느라 한 학기 내내 생병을 앓곤 했다.
마침내 방학이 되자마자 배낭을 메고 무전여행을 떠나곤 했다.
한 달 동안 아무데나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는 무전여행의 재미는 진짜 가출만은 못해도 따분한 교사 생활을 그럭저럭 견디게 만들 정도는 되었다.
그러던 중 1966년 서울신문 신년호에 장편소설 현상공모 당선자인 강석근씨에 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동료 교사가 그 기사를 보여주면서 나더러 문학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문학만이 당신을 끝없는 방황에서 구해줄 거라는 이야기였다. 문학이 좋은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 쪽은 가출과 다름없는 형식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벽을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고 이루지 못한 욕망들을 이룰 수 있는, 이를테면 정신적 가출행위였다.
데뷔한 지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는 매번 작품을 통해 매번 가출을 도모하곤 한다.
소설이란 수단을 빌려 한 꾀죄죄한 영혼의 가출 전말을 고백함과 동시에 고백 형식을 통해 또 다시 가출 기도를 되풀이함으로써 나는 나를 겁주고 주눅들게 만드는 현실의 갖가지 억압기제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며 구원을 받곤 한다.
● 윤흥길 연보
▦ 1942년 전북 정읍 출생
▦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 당선 등단
▦ 1973년 원광대 국문과 졸업
▦ 1995년~현재 한서대 문예창작과 교수
▦ 소설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완장' '꿈꾸는 자의 나성' 장편소설 '순은의 넋' '묵시의 바다' '밟아도 아리랑' '산에는 눈 들에는 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등
▦ 한국문학작가상(1977) 한국일보문학상(1983) 현대문학상(1993) 요산문학상(1995) 21세기문학상(200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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