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전선(FN) 장-마리 르펜 당수가 몰고 온 충격파가 프랑스 국경 너머로도 감지되고 있다.유럽의 지도자들은 프랑스인의 40%가 르펜과 극우ㆍ극좌 후보 등 유럽연합(EU)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유권자의 절반이 세계화에 반대하는 후보를 택한 것도 프랑스의 주변 교역국들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의 아랍인과 유대인도 걱정하고 있다. 르펜은 수십 년 동안 아랍 이민자들을 범죄와 실업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해 왔다.
그는 또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은 2차 대전 전쟁사의 한 부분일 뿐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말한 인물이다.
미국의 프랑스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동안 프랑스가 국내 아랍인을 배려하기 위해 중동문제에서 팔레스타인측에 편향된 태도를 취했다고 우려해왔다.
경제 문제를 이유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전복하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데도 불만이다.
그렇지 않아도 심상치 않았던 조지 W 부시 정권 내 보수ㆍ강경주의자들의 반 프랑스 감정은 이번 선거로 더 강화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극우세력 지지라는 조류와 함께 극좌 세력에 대한 지지도 눈에 띄었다.
3명의 트로츠키주의 정당 후보들이 11% 이상을 득표한 데 반해 공산당 후보는 3%, 녹색당 후보는 5%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극단주의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거나 파시스트가 장악할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표일 밤 프랑스의 논평가들은 1933년의 독일을 연상케 한다는 비유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상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르펜이 조스팽을 이긴 것은 충격이지만 전체로 봐서는 과거의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르펜은 95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5%, 88년 선거에서는 14%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선거를 두 번으로 나눠서 치르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프랑스에서의 정치 변화는 실제보다 과장돼 보이기 마련이다. 실제 르펜과 조스팽의 득표율 차이는 1%를 넘지 않는다.
어쨌든 극단주의 후보를 부상케 한 요인 중의 하나는 유력 후보간의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사회주의 실험이 재난으로 끝난 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중도 성향으로 변모했다.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고 유럽 통합, 대서양 국가의 연합에 대한 필요성도 인정했다.
이 같은 실용주의 노선은 90대에는 조스팽 정부가 경제 정책의 핵심을 재정 적자 축소나 공기업 민영화, 자유 무역, 감세 등에 둘 정도로 뿌리내렸다.
조스팽은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심지어 범죄 추방 같은 우파의 단골 메뉴를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 같은 주류 정치에 식상하고 새로운 대안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됐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범죄 문제가 부각된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유권자들은 실업보다 범죄 퇴치에 더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선거 체제의 문제다. 언론이나 여론 조사는 조스팽과 시라크의 결선 대결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28%라는 기록적인 기권율이 발생했다.
투표 참가자 가운데는 극단주의 후보 지지자들이 비정상으로 많았고 1차 투표에서 집권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야겠다고 생각한 투표자들도 많았다.
유권자들이 조스팽의 몰락과 르펜의 부상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유주의 이념과 세계경제 통합에 투철한 국가라는 평판이 흔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대선 2차 투표와 6월에 있을 총선에서 대다수 유권자는 프랑스가 명예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 필립 고든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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