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앞바다에서 고려청자 454점이 인양된 것은 고려청자의 최고 절정기인 12세기 유물이 한꺼번에 발굴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9세기부터 제작된 고려청자는 12세기에 이르러 가장 세련된 형태로 발전했다가 13세기 이후 몽골 침입 등으로 국력이 쇠퇴하면서 덩달아 세련미가 무너졌다”면서 “이번에 인양된 유물들은 모양새와 문양 등으로 볼 때 12세기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12세기 것이라도 질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지만 최고 절정기의 고려청자들이 다량 발굴된 것은 청자 연구에 일대 사건으로 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수중 고고학 발굴의 물꼬를 튼 것은 76~84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이뤄진 보물선 발굴. 그러나 2만여점에 달하는 유물 대부분은 중국 송(宋)ㆍ원(元)나라 도자기과 동전 등으로, 고려청자는 10여점에 불과했다.
해저 발굴에서 가장 많은 양의 고려청자가 발굴된 곳은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 84년 키조개를 캐던 잠수부가 청자를 발견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발굴을 실시해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고려청자 3만400여점을 건져올렸다.
95년 10월~96년 11월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앞바다에서도 14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대접과 접시류 639점을 인양했다.
비안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고려청자는 이들 사례보다 규모면에서는 훨씬 적다. 그러나 이번 인양한 유물들은 정식 발굴이 아니라 긴급 탐사에서 해저에 드러난 것들만 ‘수습’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본격 발굴이 이뤄지면 양적인 면에서도 과거 발굴 전례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희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장은 “현재로서는 전체 유물 규모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긴급 탐사 결과, 이번에 수습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유물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곧 목포해양유물전시관을 중심으로 수중 조사 전문가와 해군 등이 참여하는 비안도 해저발굴단을 구성, 본격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조유전(趙由典) 문화재연구소장은 “문화재법상 일정 규모 이상 공사를 할 때 반드시 지표조사를 해 유물이 묻혀있는 지를 확인하도록 돼있으나 해안ㆍ해저 유물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면서 “이번 조사를 계기로 방조제 건설이나 간척 사업 때도 사전 유물조사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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