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담배를 피운다. 그가 담배와 함께 바람까지 피우는 아내를 이용해 인생을 바꾸어 보려 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는 의도대로 인생을 살지 못해 존재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한 남자의 아이러니한 인생 이야기다.
등장 인물이 많거나 관계가 어지러울 정도로 꼬이거나,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던 코엔 형제 감독 영화의 이전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
배반, 연쇄살인, 예상치 못한 반전이 빠른 호흡으로 이어지는 코엔 형제의 이른바 ‘네오 느와르’ 방식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더 우울하고, 복고적인 방식으로, 평소보다 두 박자쯤 여유 있는 호흡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가 다르다는 것은 감독이 이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발사인 에드(빌리 밥 손튼)는 일과 아내에게 전혀 열정이 없는 이발사이다. 자신은 머리를 깎을 뿐, 이발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내 도리스(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백화점의 사장 빅 데이브(제임스 갠돌피니)와 바람을 피우는 걸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됐지만, 그저 담배를 피우며 착찹해 할 뿐이다.
어느 날 드라이클리닝 사업을 한다는 사기꾼 크라이튼(존 폴리토)의 말을 듣고 빅데이브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 1만 달러를 뜯어내지만 사기를 당하고, 빅 데이브와 언쟁을 벌이다 그를 죽이게 된다.
아이러니는 늘 그렇듯, 이번 영화에서도 핵심적이다.
아내가 살인누명을 썼을 때 에드는 “내가 죽였다”고 말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전기 의자에 앉히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맞아 죽은 후 강가에서 떠오른 크라이튼의 시체이다.
인과응보와 아이러니가 묘하게 겹쳐진다.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에드의 유일한 꿈은 이웃집 소녀 버디를 유명 피아니스트로 키우는 것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온 명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버디는 손이 빠르고 성실하니 커서 타자수를 하면 되겠다.” 에드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버디는 “아저씨에게 고맙다. 즐겁게 해주고 싶다”며 운전하는 그에게 덤벼 결국 차사고를 내게 만든다.
타락해가는 소녀란 또 얼마나 슬픈가.
“남편의 죽음에는 UFO를 본 이후 정부의 음모가 가세됐다”는 빅 데이브의 아내, 에드가 사형 직전 보게 되는 로스웰의 UFO 등 두 번씩 인용되거나 보이는 UFO는 인생의 불가해함을 상징하는 장치이자 스탠더드 재즈가 흐르는 복고풍 영화를 다른 영화와 다르게 만드는 요소이다.
컬러 필름으로 찍어 흑백으로 전환한 화면을 보는 것은 영화의 독특한 즐거움이다.
아예 흑백 필름에 찍은 영화보다 흑백 대비가 적은 화면은 때로 컬러 필름의 잔상이 흐릿하게 남아 있어 복고적이며, 몽환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베토벤의 야상곡이 흐르는 흑백화면과 거기에 얹은 더 우울한 인생의 이야기가 슬프다 못해 환상처럼 느껴진다.
빛나는 화면의 공로를 인정 받아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AFI 필름워드, 영국아카데미상(BAFTA) 등에서 올해의 촬영상을 수상했다.
물론 조엘 코엔 감독은 더욱 원숙해진 세계관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5월3일 개봉. 00세이상.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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