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선거정국의 지형을 바꿔놓는 인터넷, 너도나도 ‘무전기’ 한 대씩을 갖게 한 휴대폰, 구텐베르크 시대의 종언을 예고하는 전자출판, 안방극장을 구현하는 DVD 등등….
그러나 디지털 바다 속에서 아직도 아날로그 섬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지상파 방송이다.
지상파 방송이 디지털 방송으로 가는 두 가지 길, 즉 다채널화와 고화질화(HD) 중 영국은 첫 번째를, 미국은 두 번째를 택했다.
우리는 미국의 줄에 서기로 했다. 수상기 시장 선점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그러나 2006년을 대략적인 완료 시점으로 잡았던 미국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방송사의 수익모델이 분명치 않고, 수상기 판매실적이 저조한 탓에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이 달 초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디지털 텔레비전 플랜’을 발표했다.
이 플랜에 따르면 ABC CBS 폭스 NBC 등 4대 네트워크와 영화채널 HBO, 쇼타임은 9월부터 주시청시간대의 최소 50%를 HD프로그램이나 ‘부가정보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100개 가맹 방송사는 2003년 1월까지 HD프로그램 방송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FCC는 수상기 제조업체에 대해서도 디지털TV 튜너 기능 내장을 위한 일정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1996년 ABC를 인수한 월트디즈니의 로버트 이거 사장은 “ABC는 FCC의 뜻을 받아들여 올 가을에 시작되는 2002∼2003 시즌부터 주시청시간대의 50% 이상을 HD방송으로 내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송계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정책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강제규정이 아닌 자율권고 형식을 띠고 있으나 FCC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나선 데는 HDTV 시장과 콘텐츠 시장 선점을 위해 더 이상 디지털 전환을 미룰 수 없다는 정책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추세에 비춰볼 때 HDTV 수상기 시장 선점을 명분으로 미국방식으로 디지털 전환을 꾀해온 한국 정통부의 입지 역시 넓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재원과 콘텐츠 문제로 소극적으로 임해온 국내 방송사들은 적극적인 디지털 전환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고, 정부와 방송위원회 역시 디지털 전환에 따른 적극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김해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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