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의 성공이 고무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에도 여성으로서 경쟁력을 갖춘 상업 감독이 탄생했다는 점이다.이 영화는 한 여성 감독이 류승완 감독처럼 1억원도 안되는 돈을 들고 찍은 저예산 영화가 아니다.
상업 영화 제작사에 의해, 마케팅 비용도 영화 제작비에 버금갈 만큼 들어간 명백한 상업 영화다.
그리고 이런 투자의 몇 배에 달할 만큼의 결코 쉽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500만명도 자신있다”는 제작사의 말이 허장성세로 들리지 않을 만큼 극장가 흥행 성적도 탄탄하다.
3주만에 200만명을 달성했고, 흥행 감각이라면 어느 평론가도 따라올 수 없는 노련한 입회인(극장 앞에서 관객수를 세는 사람)의 감각에 따르면 “400만명은 훌쩍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재밌는 영화’와의 흥행 싸움은 “이미 끝났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이제 ‘집으로…’는 엄밀한 평론적 잣대로 평가할 만한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너무 단선적이다” “할머니와 아이의 화해 과정이 영화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잘 만든 복고 기획 상품이다” 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지만, 대부분 공식적으로는 침묵한다.
“이런 영화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자칫 10만명 대 1, 또는 100만명 대 1의 싸움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다”라고 얘기하면 “아 그러세요”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공연한 싸움 하기 싫다.”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다. 최근에 나온 수많은 히트 영화 중 이런 감성을 만들어낸 영화는 거의 없었다.
‘영상기록 병원 24시’를 보고 펑펑 울어버린 사람도, 극장에서 울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눈물은 매우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그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물 흘리게 하는 영화=완벽한 영화’란 공식이 과연 성립할까? 그리고 좋은 영화란 언제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지(聖地)에 있어야 할까.
고다르 영화는 어떤 이에게는 ‘지루한 고문’이고, 스필버그 영화 역시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어린 시절 집착증’인데도 말이다.
영화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또 다른 생산 과정이 되는 그런 고차원 방정식인데.
나는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기꺼이 추천한다. 그리고 말한다.
“영화 보고 한 번 더 얘기합시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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