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체결한 조건부 양해각서(MOU)의 일부 내용이 우리측엔 지나치게 굴욕적인 조건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더욱이 채권단의 한 축인 투신권이 MOU안에 비토를 놓겠다고 공식선언한데다 하이닉스 주식의 80~90%를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반대투쟁이 본격화하면서 매각협상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23일 하이닉스 채권단에 따르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근로자의 85% 이상이 고용승계에 동의하는 것’을 본계약 체결의 선행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측은 “양수인(마이크론)의 고용제안을 받은 양도인(하이닉스)의 근로자 85% 이상 또는 모든 핵심근로자에 의한 고용동의는 양수인의 거래완료 의무의 선행조건이 된다”는 내용을 MOU에 명시했다.
이는 고용 제안을 받은 하이닉스 메모리부문 근로자의 85%가 동의해야 본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고급 인력의 전직 또는 이탈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신판 ‘노비문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덕훈 행장은 당초 메모리 부문 인원의 85% 이상을 2년간 승계하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실제내용을 완전 곡해한 것”이라며 “마이크론이 정상적인 국제협상에서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조건을 내걸어 하이닉스 직원들의 직업선택권마저 제한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양측은 또 향후 7년간 하이닉스가 어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도록 했으며 다만 마이크론과의 협의하에 ▦내장(Embedded) 메모리반도체 장치의 설계ㆍ생산ㆍ마케팅ㆍ판매 ▦제3자를 위한 파운드리(주문반도체) 서비스 등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 역시 비메모리 잔존법인(하이닉스)의 사업영역을 사실상 통제하는 측면이 강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밖에도 MOU에는 ▦마이크론이 잔존법인의 재무제표를 포함한 중요 정보를 받을 권리 ▦ 한국 정부로부터 조세감면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마이크론과 잔존법인이 등록세, 취득세 균등 부담 등 마이크론에 일방적 특혜를 주도록 명시한 불평등 조항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반발기류가 급속 확산되고 있다. 한국ㆍ조흥ㆍ서울투신 등 하이닉스 채권을 보유한 주요 투신사들은 23일 비공식 비상대책모임을 갖고 오는 27일 채권단 전체회의에서 MOU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 투신사는 특히 리스나 할부금융 등 다른 제2금융권 채권기관들과도 연대, 공동대응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중이다.
현재 투신권이 보유하고 있는 하이닉스 채권규모는 전체의 15% 수준인 1조2,000억원 선.
조건부 MOU안이 채권단 회의에서 통과되려면 전체 채권금융기관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만약 투신권이 은행(채권 지분 70%)을 제외한 여타 제2금융기관들과 공동보조를 맞춰 약 30%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면 MOU안을 부결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이닉스반도체 소액주주 모임인 ‘하이닉스 살리기 국민운동연합회’과 하이닉스 노동조합도 이날 각각 성명을 내고 37만 소액주주와 1만5,000여 하이닉스 직원, 2,500여 협력업체와 함께 ‘헐값 매각’ 저지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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