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리 르 펜 국민전선(FN) 당수의 대선 결선투표 진출은 프랑스 현대 정치사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반이민ㆍ반유대주의를 부르짖는 극우파가 크고 작은 세력을 형성한 적은 있지만 대통령직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정도의 주요 정파로 대두하기는 2차대전 이후 르펜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 등 주변국이 선거결과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프랑스 시민 수십만명이 새벽까지 반 르펜 시위를 벌인 것도 극우파의 급부상에 대한 우려의 표시다.
■ 르펜은 온갖 돌출행동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과격한 발언으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다.
대다수 양식있는 프랑스인들은 그를 과격한 정치 부랑아 정도로 취급해 왔다.
한 TV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앵커가 “르펜을 초대해 대담을 나누느니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그는 자격 미달의 ‘막가파’ 정치인이었다.
이번에도 사형제 부활, 불법이민자 추방, 프랑화 복귀, 유럽연합 해체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지만 이를 주목한 프랑스 언론은 아무도 없었다.
■ 그는 1972년 FN을 창당, 74년 대선에 첫 출마한 이후 30년간 단골 후보였다.
번번이 1차 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다가 88년 대선에서 14.4%, 95년 대선에서는 15%의 지지를 얻어 도약의 기반을 확보했다.
98년에는 , 당내 2인자가 르펜이 자신의 아내를 후계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에 반발, 뛰쳐 나가 신당을 창당하면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9ㆍ11테러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르펜 돌풍으로 나타났다.
■ 과연 르펜 현상은 프랑스 좌파 퇴조의 서곡일까. 국민들의 의식이 실제로 극우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정치 분석가들은 유권자의 30%가 기권한 낮은 투표율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회수율이 낮거나 모집단이 적은 여론조사에서 왜곡된 의사가 나타나듯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변화 욕구에 둔감했던 좌-우파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었을 뿐 르펜을 좋아할 정도로 극우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변화의 욕구가 르펜 현상으로 분출됐다는 분석은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에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듯 싶다.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