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바위 절벽, 예상밖의 고생路, 비명나오는 풍광체력과 인내를 시험받고 싶은가. 월악산(충북 제천시)으로 가라.
월악산은 해발 1,094㎙. 지리산이나 설악산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산세의 매운 맛은 어깨를 견줄 만하다.
월악산에는 세 가지 ‘악!’이 있다.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드는 아찔한 바위 절벽, 예측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독특하고 고생스러운 등산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경이로운 풍광이 그것이다.
고통의 끝에서 맛보는 황홀함. 월악산 산행에서 그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덕주골에서 출발했다. 월악산에서 가장 일반적인 등산 출발점이다.
찻길이 나 있는 덕주사까지는 거의 평지. 속보로 걸으며 다리를 풀기에 제격이다. 오른쪽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경치가 만만치 않다. 수경대, 학소대 등 계곡의 명승이 이어진다. 덕주사는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6ㆍ25때 모두 불에 타고 1970년 새로 지었다. 덕주사를 지나면 길은 계곡을 가로지른다.
약간 경사. 바위가 섞여있는 흙길이 정겹다. 아직 힘겨운 줄 모른다. 눈을 들어 숲을 본다. 연초록의 신록이 눈부시다.
덕주사를 떠난 지 30분. 거대한 돌불상과 만난다. 덕주사마애불이다.
높이 13㎙로 바위 절벽에 조각되어 있다. 긴 눈과 큰 코, 살찐 얼굴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란다. 보물 제406호이다.
마애불에서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산책로였다. 가족 나들이라면 마애불이 종착지이다.
등산 경험이 일천하거나, 몸 상태가 안 좋다면 발길을 돌리는 것이 좋다. 앞으로 나타날 길은 길이 아니다. 깎아지른 벼랑을 기어오른다. 물이 넉넉해야 한다.
마애불 앞에 계곡물을 고무 호스로 끌어 놓았다. 물맛이 좋다. 물통을 가득 채워야 후회가 없다.
마애불에서 960봉까지. 첫 관문이다. 산이 아니라 하늘로 오르는 길이다. 바위 사이사이를 돌아 수직에 가깝게 등산로가 나 있다.
대부분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비교적 완만한 곳은 돌계단, 험한 곳은 철계단이다.
철계단은 경사도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것도 있다. 계단이 짧으냐. 그렇지 않다. 40~50계단은 부지기수이다.
산행에서 만나는 계단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다. 개인의 걸음폭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에 호흡 조절이 흐트러지기 일쑤이다.
고통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자주 쉬는 것.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본다. 월악산의 바위 능선이 병풍처럼 하얗게 펼쳐져 있다.
바위 능선의 아랫부분은 울창한 숲. 바위가 숲을 방석 삼아 깔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신록의 빛을 머금은 숲의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며 오르기를 약 50분. 960봉에 닿는다. 해발 960.6㎙이다. 앞으로 약 130㎙만 더 오르면 된다. 약간 뿌듯하다.
더구나 길은 편안한 주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한다.
숨이 잦아들면서 눈도 즐겁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소박하고 앙증맞은 꽃들이 외롭게 혹은 무리 지어 색깔을 뽐낸다.
약 25분.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뿌듯함은 다시 걱정으로 바뀐다. 영봉은 봉우리가 아니라 아예 도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이다.
먼저 오른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이 아니라 고물거리는 개미처럼 왜소하다. 길은 절벽 봉우리를 빙돌아 뒤 쪽으로 나 있다.
약 30분 정도 걸리는 짧은 코스이지만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길은 예상을 완전히 무시한다. 단순히 오르는 길이 아니다.
한 굽이 돌면 오르막,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한 마디로 ‘질린다.’ 역시 마지막 부분은 계단이다.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매달아 놓았다. 계단이 없었을 때에는 어떻게 올랐을까. 새삼 인간은 지독하다고 느낀다.
영봉에 섰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충주호. 가뭄으로 물가가 허옇게 드러나긴 했지만 역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고 산들이 보인다.
소백산 등 백두대간의 거친 연봉과 구담봉, 옥순봉 등 단양팔경도 한 몫을 한다.
가슴 속으로부터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은근히 걱정도 된다. 어떻게 내려가나.
권오현기자
koh@hk.co.kr
■덕주사→신륵사코스 타면 가장 빼어난 경관 볼수있어
월악산 주봉인 영봉에 오르는 길은 모두 네 곳. 가장 인기가 높은 덕주사코스를 비롯해 송계리(동창교)코스, 신륵사코스, 보덕암코스 등이다.
등산과 하산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최근 새로 단장한 보덕암코스는 봄철 산불방지기간(5월 말까지) 중에는 폐쇄돼 있다.
가장 빼어난 경관을 구경하려면 덕주사코스로 올라 신륵사코스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송계계곡과 용하계곡 등 월악산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계곡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면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이런 경우에는 덕주사코스로 올라 송계리코스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 1㎞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15분 정도 걸으면 출발지에 닿을 수 있다. 반대로 송계리에서 올라 덕주사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송계리 쪽에는 주차장이 없다.
어느 쪽으로 오르내려도 최소한 6시간을 잡아야 한다. 간식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하고 특히 물을 넉넉하게 가져가야 낭패를 면한다.
덕주사코스 주차장 인근의 식당에서 산나물 반찬을 곁들인 도시락을 판매한다. 영봉 정상은 좁고 가파르다.
긴 휴식이 곤란하고 식사 장소로도 적당치 않다. 송계리코스와 덕주사코스가 영봉을 앞에 두고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편한 자리가 많다. 대부분 점심식사를 이 곳에서 해결한다.
월악산에 들렀다면 자연관찰로를 꼭 들러야 한다. 만수계곡의 약 2㎞ 구간에 조성돼 있다.
표고차가 80㎙ 정도여서 아이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약 1시간 30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월악산의 모든 동식물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43_653_1205)에서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자연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체일 경우에는 수시로 실시한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이천IC에서 빠져 3번 국도를 계속 타면 수안보에 닿는다. 3번 국도의 약 70%가 4차선(제한 속도 80㎞)으로 확장돼 있다.
수안보에서 597번 지방도로를 갈아타고 약 8㎞ 달리면 송계계곡이다.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중앙고속도로 단양IC에서 빠져 5번, 36번 국도를 갈아타면 된다.
597번 지방도로가 36번 국도와 만난다. 597번 지방도로 변에 국립공원 매표소가 있다. 주차료는 없고 1인당 1,3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고속버스나 열차로 충주까지 이동한 후 충주역 앞에서 출발하는 송계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5시 30분부터 1시간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쉴 곳
숙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근의 수안보는 거대한 숙박촌이다.
수안보 한화콘도(043-846-8211) 등 대규모 콘도시설은 물론, 수안보유스호스텔(846-3151), 사조마을 유스호스텔(846-0751), 월악산 유스호스텔(651-7001) 등 청소년들이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다.
수안보 온천은 산행 후 땀을 씻고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덕주사와 송계리코스 인근에 민박집이 많다. 대부분의 식당과 휴게소가 민박 시설을 갖추고 있다.
▽먹을 것
월악산 등산로 입구의 식당가에서는 몇 가지 특이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 가지는 묵밥. 도토리묵을 멸치 우린 물에 넣고 갖은 양념을 섞어 ‘묵국’을 만든다.
밥을 묵국에 말아 먹는데 담백하고 구수하다. 아이들도 잘 먹는다.
또 한 가지는 밤국수. 밤을 말려 가루를 내고 이 것을 반죽해 면을 뽑았다. 밤의 향기가 은근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지금은 산나물이 제철. 반찬으로 신선한 산나물이 오른다. 이 지역 특산물인 좁쌀 동동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5년쯤 됐을 겁니다. 회사에서 단합대회 겸 북한산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 시절 그런대로 산에 많이 다녔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검정을 출발해 대남문까지 오르는 짧은 코스였습니다.
왕복 3시간 정도면 충분하죠. ‘에계.’ 코웃음까지 쳤습니다.
당연히 초반에는 선두 그룹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절반 정도 오르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점점 턱에 차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이 빠졌습니다. 조금 더 진행하니까 세상이 온통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별 수 없지요.
길 옆에 주저앉을 수 밖에요. 한참을 쉬는 동안 뒤를 따라왔던 동료들이 모두 추월해 올라갔습니다. ‘왜 그래?’ 조소를 약간 섞은 걱정을 하면서 말이죠.
10년 가까이 산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산을 우습게 본 그 건방진 방문객은 산으로부터 무참하게 벌을 받았습니다.
네 발로 기어서 결국 대남문까지 갔다가 내려왔지만 며칠간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산 이야기만 나오면 지레 겁을 먹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직업 때문입니다. 오르지 않으면 밥벌이를 못할 판이어서 할 수 없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올랐습니다.
그러기를 3년 여. 이제 산행은 밥벌이만큼 간절한 것이 됐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큰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아직 얼치기 산꾼이지만 산행의 매력을 늘어놓자면 한이 없습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한 가지만 꼽아볼까요. 바로 건강입니다.
지난 가을 영암 월출산에 오를 때였습니다. 월출산도 엄청난 바위산입니다. 물론 초보 산꾼은 엉금엉금 기고 있었죠.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젊은이 내가 좀 먼저 갈까?” 길을 비켜달라는 사람은 백발 어르신이었습니다.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 몇이 모두 나를 추월해갔습니다.
정상에서 노인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한 분에게 여쭸습니다. “올해 연세가….” “응 아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을 했습니다.
거친 사회생활에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몸이 완전히 망가졌었다고들 합니다. 환갑부터 등산을 시작했는데 완전히 기력을 회복하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군살 없는 몸매와 탱탱한 피부는 나이를 전혀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을 탄지 30년이니 내 나이는 서른이야.”
월악산 아래에서 마시는 하산주가 너무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눈부신 신록은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빛나는 계절에 감히 산으로 청합니다.
권오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