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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고건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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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고건 서울시장

입력
2002.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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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건(高 建) 서울시장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원래 인터뷰의 묘미란 대상의 다른 모습 – 특히 본인이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 - 을 끌어내는 데 있는 것인데 그에게선 그런 틈입의 공간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한시간 내내 그는 말 실수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교과서 같은 원칙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여러 정권에 걸쳐 숱한 주요 공직을 거쳤으면서도 별다른 오점이나 스캔들없이 여전히 공무원 사회의 신화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를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한나라 양당의 차기 서울시장 후보가 확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터뷰에 응한 고 시장은 “서울시장을 두번에 6년간 했지만 느낌으로는 1988년 12월 관선시장으로 임명된 이후 13년을 줄곧 계속한 것 같다”고 감회에 젖었다.

시장 임기만료일(6월30일)을 두달 남짓 앞두고 월드컵 준비 등으로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그를 만나 30여년 간의 공직생활에 대한 회고와 특히 서울시장을 마감하는 감회 등을 들었다.

대담 = 이준희 사회부장

- 고 시장의 업적으로 무엇보다 먼저 꼽히는 것이 고질적이었던 서울시의 부패 분위기 척결입니다.

물론 개개의 시민이 느끼는 바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사실 이제 더 이상 서울시를 복마전(伏魔殿)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 시장은 이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지난해 3월 국제투명성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세계청렴인상을 수상했다)

“제일 큰 성과입니다. 보람도 느낍니다. 사실 부패와의 전쟁은 임명직 시장때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2년만에 물러나는 바람에 계속 추진하지 못했지요.

민선시장으로 돌아오면서 저의 취임일성도 ‘부패와의 전면 전쟁’ 이었습니다. 시청 가족들과 함께 많이 노력했습니다.

특히 부패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막는 투명한 행정시스템 가동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햇볕이야말로 최고의 살균제 아닙니까.

- 투명한 행정시스템의 예를 든다면.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는 각종 인ㆍ허가 신청 시 접수와 동시에 인터넷에 내용이 뜹니다.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세세한 사항을 모두 공개합니다. 신청 다음날 해당 코너를 클릭하면 결과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옛날처럼 ‘과장ㆍ국장 결재가 났으니 직접 들어와서 허가증을 찾아가라’는 식은 찾아볼 수 없게 됐지요. 민원인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면 문자메시지로 결과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책상에 민원서류를 넣어놓고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패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 외국에서도 서울시의 오픈행정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인ㆍ허가 처리절차를 리얼타임으로 공개하는 게 오픈행정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99년에는 국제투명성위원회에 가서 이 시스템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OECD(국제협력개발기구)와 세계은행에서도 큰 관심을 보입디다. 또 유엔에서는 서울시 오픈행정 시스템을 토대로 공동 프로젝트를 개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나라 행정시책을 외국으로 처음 수출하게 된 셈이지요.

여론조사에서도 시스템 시작 전에는 시민들이 공무원들에게 금품을 주었다는 대답이 13~38%였으나 이제는 6%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분위기를 바꾸려면 시스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인식의 변화 아닙니까? 아무래도 구 체질을 바꾸는 데는 적지않은 반발과 내부 혼란이 있었을 텐데.

“그래서 처벌요법과 원인요법을 병행했습니다. 원인요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소위 ‘지역 관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건축과 A씨가 고정적으로 B동을 맡는 식이었으나 지금은 민원 신청이 들어오면 누구든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시장에 부임한 직후인 98년 12월 무려 4,200여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했습니다.

시가 생긴 이래 가장 큰 규모지요. 한곳에 오래된 공무원은 모두 인사조치한다는 원칙에 따랐습니다.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은 부조리나 부패 척력에 대한 처벌요법에서 ‘일벌백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백벌백계’지요.

뇌물을 받는 공무원은 선별해서가 아니라 전원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처벌하도록 했습니다. 부패에 대해서는 관용이란 있어서는 안됩니다.

민원인에게 시장이 직접 받는 봉함엽서를 보내 뭐가 나오면 즉시 조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85명 정도 조사를 받았습니다.”

- 고 시장은 직업 공무원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닮고 싶은 전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행정의 달인(達人)’이란 말도 계속 따라 다닙니다. 배우고 싶어하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법 한데요.

“과분한 이야기입니다. ‘행정의 달인’은 제가 90년 관선시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때 당시 교통국장이었던 이원종(李元鐘ㆍ현 충북지사) 전 시장이 붙여준 말입니다.

마치 제자로부터 학위를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행정의 달인이 되려면 시민, 또는 국민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루 24시간을 일한다는 자세입니다. 또 무엇보다 청렴해야 합니다.”

- 오랜 공직 생활에서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가장 큰 보람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시절 초대 새마을담당관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 때 제가 앞장 서서 새마을운동을 점화하고 추진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71년부터 새마을운동 전성기를 이룬 75년까지 5년간 실무책임자로 젊음과 정열을 모두 쏟았습니다. 또 고(故)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우리 강산을 푸르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치산녹화사업 10개년 계획을 입안해 추진했습니다.

당시 박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푸르러진 산야를 내려다 보면서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98년 초 국무총리 때 행정규제개혁 기본법을 만든 것도 보람입니다.

- 30대 지사로 임명된 것도 대단한 화제에 올랐었는데.

“당시 내무부 지방국장은 지사로 나가는 0순위 직위였습니다. 그래서 37살 때 전남도지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헬기를 하도 자주 타고 현장을 뛰어다녀서 ‘헬기지사’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습니다. 모든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은 공직생활을 하면서 줄곧 제 소신이었습니다. ”

- 너무 원칙적, 완벽주의적이다 보니 정책 결정과 집행에 안정적이고 일관된 면은 있지만, 반면에 추진력과 돌파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위험부담을 안으려 들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추진력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타일은 정책결정과정을 공개하고 여러 사람이 논의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행정추진의 요체입니다. 무조건적인 돌격이 추진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참여토록 하는 것이 진정한 추진력입니다. 서초구 추모공원 문제를 보세요. 제 임기내에 반드시 추진할 생각입니다.

모든 행정 정책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맹목적 추진은 안됩니다. 가령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집행하라’는 위의 요구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예전 수서사건이 바로 그 것을 드러내 보여준 것 아닙니까?”

- 당장의 현안도 잠깐 짚어보지요. 월드컵 개최도시로서의 분위기가 기대만큼 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고양책은 있습니까.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시내도로 가로 장식물을 화려하게 꾸며 도시 전체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 계획입니다.

그 밖에도 오랫동안 준비해온 여러 행사들이 있습니다. 각종 문화이벤트를 월드컵 행사와 연관시킨다는 계획입니다. 26일 열릴 예정인 선유도 공원 개장식을 비롯해 시립미술관 및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등이 그런 것 들입니다.”.

-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여러 여론조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애정을 쏟아온 시장직에 정말 더 미련이 없습니까.

“6월30일까지는 시장 직무 이외에는 일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울시장직은 이번 재수(再修)로 졸업했으면 합니다.

민선시장을 할 당시 신분은 총리에서 물러나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을 때 였습니다. 선거 1개월 반전 시장 출마를 권유 받았습니다.

임명직 시장 때 벌려놓은 일이 많아 출마했던 것입니다. 이제 제 역할은 다 했다고 봅니다. 그 동안 국정감사나 시의회 자리 등에서 38번이나 출마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 대선과 관련해서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여전히 일각에서는 거명됩니다. 그와 관련해서 최근의 정치상황도 답답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그는 웃으며 엉뚱한 답변으로 피해 나갔다) 서울시는 레임덕이 없습니다.”

- 서울시장을 떠나면 당적보유 문제는 어떻게 할 겁니까.

“당적을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민선시장에 당선된 뒤 명지대 석좌교수 자리를 휴직했습니다.”

- 선배 입장에서 다음 시장에게 주문하고 싶은 자질은 어떤 겁니까. 또 시장이 되면 이러저러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하는 것들도 있을 텐데요.

“얘기하기가 좀 그렇군요. 역시 청렴성 등 기본적인 덕목은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거대도시의 관리자, 비전 제시자, 디자이너까지도 돼야 하지요. 그리고 저는 주로 ‘클린 시티(깨끗한 도시)’를 목표로 일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린 시티(녹색 도시)’에 더 중점을 두어야할 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도심 내에 녹지를 더욱 많이 확보하고 대기오염을 줄이는데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겠지요.

역대 시장 중 평가할만한 분이 있습니까.

“다들 그 시기에 할 일은 다 했다고 봅니다. 제가 역대 시장들과 함께 근무한적이 없어 평가하기 어렵네요.”

/정리=김진각기자 kimjg@hk.co.kr

●약력

▦1938년 전북 옥구

▦56년 경기고, 60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

▦61년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75년 전남지사

▦8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81년 교통부 장관

▦82년 농수산부장관

▦83년 미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84년 미 MIT대 객원연구원

▦85년 12대 국회의원

▦87년 내무부장관

▦88년 12월~90년 12월 서울시장

▦94년 명지대 총장

▦96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97년 국무총리

▦98년 7월~ 2002년 6월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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