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지난 15일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조성을 억제하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저비용 고효율의 선진정치구조로 전환한다는 명분 아래 공직선거 및 부정방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과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부패를 근절한다는 명분 아래 국민의 부담만 늘여왔듯이, 이번에도 국민의 부담만 늘리게 될 우려가 높다.
이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자치단체 선거에서 정당 또는 후보자가 개최할 수 있는 연설회의 횟수를 축소하는 대신 개인이나 정당이 부담하던 연설회 개최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그간 연설회에 청중을 동원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금을 썼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연설회 횟수의 축소는 정치비용을 축소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설회 횟수가 축소된다고 해서 후보자나 그 선거조직이 손을 놓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연설회 횟수의 축소가 자동적으로 선거비용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아가 연설회의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게 됨에 따라 현재에는 연설회를 하지 못할 후보자들도 개정안 아래에서는 연설회를 열 수 있어 후보자나 정당 부담은 줄겠지만 연설회 총비용은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적인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개정법안은 또 선전벽보, 선거공보, 소형인쇄물, 연설 및 대담 등에 대한 국가의 비용보전 기준을 완화했다.
대통령 및 자치단체 선거의 경우 후보자의 득표수가 유효투표총수를 후보자수로 나눈 수 이상이거나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0이상일 때,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후보자의 득표수가 유효투표총수를 후보자수로 나눈 수 이상이거나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15이상일 때로 규정된 기준을 후보자의 득표수가 유효투표총수를 후보자수로 나눈 수 이상이거나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10이상일 때로 하향조정한 것이다.
이러한 선거경비 보전 자격의 확대를 두고 정치적 기회의 균등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지만,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진정한 의미의 군소정당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3~5%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10%라는 기준은 3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타협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선거에서 국고지원의 확대는 대선에 임하게 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면 지원조건을 낮춘 것은 당세가 위축된 자민련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국고의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도록 배려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개정법안은 우리 정치자금제도의 근본 문제점인 정치자금의 불투명성에 따른 정치부패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보스중심의 사당적 정당구조의 물적 토대가 되어왔던 국고보조의 독과점적인 분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역시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양대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부담만 늘리는 격이 되었다.
이는 곧, 정치권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법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의 정치자금제도를 보면, 정치자금의 수령 및 지출이 정당을 중심으로 이뤄질수록 의원들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당의 통제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정치자금을 특정개인이나 집단에 의존할수록 정당은 정치자금을 지원한 개인이나 집단에 포획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가 늘어갈수록 당은 관료화되고 국민에 대한 대응성과 책임성이 낮아지며, 정치자금이 공개되지 않을수록 정치부패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정치자금제도의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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