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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워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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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워즈워스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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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4월23일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80세로 작고했다.워즈워스는 새뮤얼 콜리지와 함께 낸 ‘서정 담시집’(1798)을 통해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연 시인이다.

두 살 터울의 이 두 사람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환멸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인 1790년 혁명 1주기를 맞은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잠깐 여행한 워즈워스는 이듬해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절정기에 이른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심취했다.

그는 이 두번째 프랑스 체류에서, 뒷날 자신의 사생아를 낳을 아네트 발롱이라는 여성과 깊은 사랑에 빠지고, 혁명파 장교 미셸 보퓌를 만나 공화주의의 세례를 받는다.

워즈워스는 조국에 돌아온 뒤에도 혁명의 물결이 도버 해협을 건너올까 두려워하는 영국 지배계급에 맞서 루이 16세의 처형을 옹호하고 폭력 사용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그는 이 시기에 공화주의적 열정과 조국애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느꼈다.

그러나 워즈워스가 그보다 더 참담한 좌절감을 맛본 것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이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집권을 통해 굴절되면서였다.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30세를 맞은 그는 결국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열렬한 애국자가 되었고 만년에는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워즈워스는 73세때인 1843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워즈워스의 시 ‘수선화’. “골짜기와 언덕 위로 높이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 문득 한 무리를 보았네/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하늘하늘 춤추는/ 금빛 수선화의 무리를//(…)//이따금 한가로이 혹은 생각에 잠겨/ 자리에 누워 있을 때면/ 고독의 축복인 마음의 눈에/ 수선화들이 반짝이네/ 그럴 때면 내 가슴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을 추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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