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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판공비 망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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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판공비 망국론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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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판공비는 쌈짓돈, 혈세낭비’ ‘판공비는 제2의 월급? 영수증 없이 기밀비 분류 6개 기관 먹는데 100% 써’ ‘서울시장 하루 판공비 110만원, 작년 사용 4억 중 대외활동비 43%’ ‘판공비 39%가 접대비, 광주ㆍ전남 단체장… 일부선 66%나 지출’ ‘서울대 총장 한 해 판공비 4억5,000만원, 정ㆍ관계 선물비만 5,800만원’판공비 문제를 다룬 신문 기사 제목들이다.

오래 전부터 판공비에 관심이 많아 그간 관련 기사를 모았더니 그 양도 엄청나거니와 하나같이 모두 판공비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최근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법을 이용하여 고위 공직자의 판공비 공개를 요구하고 있고 공개를 거부하는 공직자에 대해 법정 소송까지 제기해 승소하는 등 판공비를 둘러싼 논란은 그칠 줄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매우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욕만 먹는 판공비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은 왜 나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전국의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1년에 수억원에서 수천만의 판공비를 먹고 마시고 선물하고 관혼상제 챙기는 일에 쏟아 붓고 있다.

그 돈의 크기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강화하는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문화다.

또 판공비 쓰는 재미에 고위 공직을 탐하는 사람도 많으니 ‘판공비 망국론’을 제기한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판공비 없이 고위 공직을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문화라는 게 하루 아침에 뜯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항변도 타당하다.

그러나 그런 항변은 기존의 ‘부패 문화’를 전제로 한 항변일 뿐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지고 그래서 큰 돈이 있어야만 하는 기존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부패 청산은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부패는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

선한 사람들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저질러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우선 우리의 회식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한국의 고급 음식점이나 고급 술집에서 자기 돈 내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그 쪽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다 남의 돈, 그것도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모두 국민 세금에 해당되는 돈으로 흥청망청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모든 사람이 ‘화끈한 회식 없이 인화단결은 어렵다’는 속설을 믿는 한 한국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판공비 잔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런 자리에서 익히게 될 ‘공짜 접대’의 정신은 서서히 부패에 둔감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회식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지불 방식이 문제다. 각자 내는 방식으로 바꿔가야 한다.

‘각자 내기’ 문화를 좀스럽고 인정머리 없다고 보는 시각이 부패의 씨앗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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