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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극우돌풍…좌·우 양립 뿌리째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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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극우돌풍…좌·우 양립 뿌리째 흔들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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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 결선진출 배경·전망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NF) 당수가 진출한 것은 30여년 간 유지된 좌우파 양립의 프랑스 정치 구도를 뿌리째 흔드는 지각 변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62년 프랑스 대선에 직접선거가 도입된 이후 극우파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 것도, 사회당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처음 있는 일로 58년 선포된 제5공화국 헌법 체제의 정치적 기반이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르펜 돌풍이 일어난 것은 우선 선거를 앞두고 치안 불안 악화에 따라 이민 반대 정서가 고조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98년 조스팽 총리 집권 이후 범죄율이 증가해 온 데다 올들어 전례 없는 총기난사 사건까지 일어나 시의원들이 몰살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유권자들이 불안을 느껴 이민자 급증과 이들의 높은 범죄율을 정면 공격한 르펜 당수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또 역대 최다인 16명의 후보자가 난립해 표가 분산됐고, 특히 아를레트 라기예 노동자 투쟁당 당수, 장 피에르 슈벤망 시민운동 당수 등의 출마로 좌파의 분열이 심해 르펜이 반사적 이익을 누린 점도 있다.

여기에 시라크-조스팽 대결로 95년 대선의 재판이 되는데 대해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꼈고, 1차 투표에서 본선 진출이 확실한 주요 후보에 반발해 다른 후보를 찍는 유권자 성향도 한 몫해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지적도 있다.

르펜 당수가 다음달 5일 결선 투표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 르펜의 급부상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데다 조스팽 총리의 사회당까지도 시라크 지지를 당부하고 나서는 등 반 르펜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회당 대변인은 21일 “르펜 후보의 외국인 혐오증, 인종차별주의로 인해 사회당원들은 시라크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표 마감 직후의 2차 투표 여론조사에서는 시라크 대통령이 80%에 가까운 지지를 얻어 재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르펜 돌풍은 프랑스 정치에 예측 불허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당장 결선 투표에 좌파 후보가 없어 유권자들이 사실상 공민권을 박탈당했다는 소리가 일고 있고 정통성 논란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또 사회당 등 좌파 지지율이 25%에 불과한 데 비해 르펜 등 극우파가 20%에 육박하는 지지를 확보, 6월 총선을 계기로 정치판이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집권당으로 6월 총선 승리를 예상했던 사회당의 미래도 점치기 어렵게 됐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르펜과 그의 공약

장-마리 르펜(74) 국민전선(NF) 당수는 반 이민, 사형제도 부활, 유로화 반대 등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으로 프랑스 정계의 주류에서 배척당해 온 인물이다. 선거 도중 상대 후보를 폭행하는 등의 돌출 행동과 과격한 인종차별주의 발언으로 백안시되어 왔다.

1972년 NF를 창당, 30년째 이끌고 있는 그는 1928년 해안도시 모르비앙에서 태어나 파리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49년부터 3년간 극우 학생 단체인 ‘라 코르포’의 회장을 지냈고 53년 알제리 사태와 57년 인도차이나 전쟁에 공수부대원으로 참전했다.

74년 대선에 첫 출마했으나 1차 투표 지지율이 0.75%에 그쳤고 81년에는 후보 등록에 필요한 후원자 서명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88년 대선에서는 14.4%, 95년 대선에서는 15%의 지지를 얻는 등 꾸준히 기반을 확보해 왔다.

98년에 아내를 당권 후계자로 삼으려다 당내 2인자인 브뤼노 메그래가 지지자들을 이끌고 나가 분당되는 바람에 지지율이 급속도로 약화됐으나 이번 선거로 재기했다. 그는 1차 투표 결과가 알려진 직후 “노력과 인내, 신의 도움으로 모든 장애물을 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르펜은 ‘반이민 국수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 과격한 공약들을 내걸고 있다. 모든 불법 이민자의 즉시 추방과 프랑스 국민과 유럽연합(EU) 국민을 우선시하는 고용ㆍ사회복지ㆍ주택 정책을 주장했다. 9ㆍ11 이후 국민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81년 폐지된 사형제의 부활, 외국인 범죄자의 형 집행 후 영구 추방 등을 제시했다.

또 유로화 추방 및 프랑화 복귀, 마스트리히트 조약 등 유럽 통합 3대 조약 탈퇴, EU 집행위 폐지 등을 약속했으며 고용과 국산제품 보호를 위한 ‘상업적 국경’설치, 국내 및 수출 시장 탈환을 위한 기업 보조금 제도 등을 주장하고 있다.

남경욱기자

■"프랑스 수치의 날"유럽 경악

장-마리 르펜 후보의 대선 결선 진출이 확정되자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극우파의 부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프랑스 증시와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는 등 경제적 영향도 끼쳤다.

유럽 각국은 최근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에 이어 프랑스에까지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재앙’으로 받아들이며 극우주의 출현을 경계했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파리에서는 1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좌ㆍ우파는 르펜에 대항해 연합하라” “르펜은 파시스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특히 르펜 후보가 공공연히 주장해 온 반 이민 정책과 유대인 폄하에 대한 우려가 컸다.

프랑스 제2의 도시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한 마르세유의 유대계 주민들은 르펜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역사의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엘리 이샤이 내무장관 겸 부총리는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인들에게 짐을 꾸리고 이스라엘로 이주할 것을 촉구했다.

국외에서도 이번 선거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영국 노동당의 사이먼 머피 원내총무는 “프랑스 정치와 좌파의 재앙”이라며 “극우파가 유럽 전역으로 암처럼 번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닐 키녹 부위원장은 “프랑스 대선은 유럽 정치에 더러운 바윗돌을 던진 격”이라며 “유권자들이 흩어지면 우파와 극우파,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표를 얻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좌파 성향 일간지 리베라시옹과 르 파리지앵은 1면에 ‘노(No)’ ‘충격’ 이라고 제목을 달았으며 중도 우파의 르 피가로와 중도 좌파의 르몽드는 ‘지진’이라고 표현했다.

영국 선 지는 ‘프랑스 수치의 날’이란 제목으로 선거 결과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유럽 주변국 언론들은 대부분 이번 결과가 유럽 정치 판도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범수기자

■佛좌파 좌초하나

리오넬 조스팽(65) 총리의 프랑스 대선 결선 진출 실패는 청렴한 면모를 지난 한 정치인의 몰락임과 동시에 프랑스 좌파의 역사적인 패배로 평가되고 있다.

19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정계에 두각을 낸 지 20여 년 만에 말 그대로 ‘충격적인’ 고배를 마신 조스팽은 곧 정계를 떠난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 사회당 중심의 프랑스 좌파 정당들이 짊어져야 할 짐은 적지 않게 무거워 보인다.

패배의 동인은 우선 조스팽 자신에게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해 경제 불황에 따른 실업률 상승이 우선 적지 않은 마이너스로 작용한 데다 무리하게 도입한 주 35시간 노동 정책은 기업의 반감을 불렀다. 게다가 상당수 좌파 유권자들이 이념이 탈색된 공약 때문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갖은 부패 스캔들을 뿌렸던 보통의 프랑스 정치인들과는 다른 이미지로 호평 받았지만 엄격한 인상 때문에 대중의 호감을 사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사분오열한 프랑스 좌파 정당도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조스팽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공산당과 녹색당은 각각 로베르 위 후보가 4%로 꼴찌를, 노엘 마메르 후보가 5.5%라는 저조한 득표를 기록했다.

경제나 치안 같은 탈 이념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조스팽을 외면한 극좌파 후보들이 뿔뿔이 흩어져 출마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프랑스 정치 사상 처음 대선 결선 진출에 실패한 좌파 정당의 앞날이다. 사회당은 극우 바람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일단 결선 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후보를 지지하도록 촉구하고 나섰지만 중장기로는 좌파 정당의 연대가 관건이다.

조스팽 집권 이후 사회당이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장 경제로 기울어지면서 생겨난 극좌 정당들과의 이견을 좁혀 나가는 일이 급선무다.

조스팽 퇴진 후 당내 문제를 추스른 뒤 사회당은 우선 공산당ㆍ녹색당과, 이어 노동자투쟁당 등 극좌 정당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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