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21일 경기지역 경선에서 정동영(鄭東泳) 후보에게 패한 뒤 “선거인단의 진지함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승승장구 하던 노 후보가 불의의 일격을 당하자 그 원인을 유권자의 행태 탓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노 후보는 낭패스러움을 면키 위해 이런 말을 했을 지는 모르나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다.
아직 경쟁자가 남아 있는 경선의 한 주자로서 유권자의 심판을 실제보다 가볍게 본 것 아니냐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노 후보는 “오히려 스스로가 진지하지 못했거나 방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선거인단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꼭 그렇진 않았다.
노 후보는 이인제(李仁濟) 전 상임고문의 후보사퇴 이후 경기지역 선거운동을 하루 쉬었고 경선 현장에서의 ‘악수 공세’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후보 연설에서도 신명이 나지 않는 듯 했다.
연설때 경기지사후보 경선에 나선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만을 굳이 소개한 것도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꾸로 경기지역 선거인단이 보여준 표심의 ‘질(Quality)’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는 것 같다.
노 후보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정책 설명을 하는데 주력하는 등 이전과는 분명 다른 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선거인단은 그럴듯한 화술이나 정치적으로 자극적인 발언에는 환호하면서도 정책을 말할 때는 장내가 썰렁해졌다.
이미 승자가 결정된 상황에서 여분의 투표를 하고 있다는 심리적 상태가 이러한 무덤덤함을 부채질하면서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민주당 경선은 28일 서울지역 경선을 통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되든 후보와 선거인단이 모두 진지함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유종의 미를 거둔다.
고태성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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