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루스가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고 지칭한 이래 미국인들의 가장 큰 강박관념 중의 하나는 미국의 시대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특히 지나친 국방비 지출 등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표출되었던 레이건 정부 말기에는 미국의 쇠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 공감대로까지 확산했다.
경제적 역량을 초과하는 지나친 국제개입을 피하고 미국의 이익에 반드시 필요한 선택적 개입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제국의 쇠퇴'강박관념
그러나 미국이 로마나 영국 등 과거의 제국들과 같은 쇠망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안들도 제시됐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문화선도력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중요한 근거로 꼽았다.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인 조지프 나이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89년 ‘선도할 운명(Bound to Lead)’이라는 저서에서 ‘소프트 파워’ 개념을 소개하며 미국의 패권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언했다. 소프트 파워는 “국제사회에서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군사력과 경제력 등이 하드 파워라면 소프트 파워는 미국적 가치관, 정보통신, 교육기관, 문화의 수출, 국제기구와 제도를 통한 의제설정 능력 등에서 나온다는 게 나이의 주장이다. 정치체제, 인터넷과 CNN, 하버드, 맥도널드와 IMF 등이 21세기 미국의 힘이라는 것이다.
나이는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폴 케네디의 ‘제국의 흥망’에 대한 반론으로 책을 펴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쇠락한 대영제국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는 이유를 소프트 파워의 비교우위에서 찾았다.
그리고 미국 학자들의 공통된 연구과제인 패권 장기화의 길은 이 같은 힘을 증강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은 클린턴 정부에 국방부 차관보로 참여한 나이와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스트로브 탈보트에 의해 현실정치에 적용하는 국가전략의 틀로 편입된다.
소프트 파워는 미국이 정신적으로 초강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발휘하게 된 것은 결코 오래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항상 자신들의 국제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쟁을 거듭해 왔다.
미국인들의 불안감 뒤에는 항상 유럽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해 왔다. 경제력이 유럽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남북전쟁 이후이지만 1898년 미ㆍ서 전쟁을 통해 아시아,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도모할 때까지도 새로운 역할에 대해 확신이 부족했다.
경제적 성장이 곧 시장의 확보를 필요로 했고,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이어졌다는 수정주의 학파의 기계적인 해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미국은 1차 대전 당시 윌슨의 이상주의적 국제주의를 앞세워 참전하지만 태생적으로 존재했던 유럽에 대한 열등감은 2차대전 말기에 가서야 해소되게 된다.
▼ 1차대전후 유럽에 우위
놀라운 사실은 미국의 자신감 회복이 미국의 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적극적 수용 태도로 인해 가능했다는 점이다.
1차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유럽인들에게는 미국은 새로운 대안이자 희망이었다. 많은 유럽의 예술인들이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에 귀화하기 시작했고, 레닌을 신봉하던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조차 미국을 현대화의 상징이자 성공사회의 메타포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서구문화의 선두주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는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재즈음악과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소비패턴이 바뀌었으며 미국식 생활방식이 유럽의 전통적 문화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유럽에서 군사 정치 경제적 파워를 행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같은 사실은 나이의 주장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유럽뿐 아니라 우리로서도 미국의 힘의 다차원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보다 오히려 민주주의 가치와 대중문화에 기초한 소프트 파워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들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미국의 힘의 역설’이라는 책을 펴낸 나이는 9ㆍ11 테러사태야말로 미국의 정책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며 댜양한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더욱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에게 있어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커졌으나 도리어 이 같은 힘이 훼손되고 있다고 조지 W 부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국제역학 관계는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소프트 파워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사력에 있어서는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위치하고 있지만 경제면에서는 미국은 일본과 유럽연합 등과 3극 체제를 이루고 있다.
세번째 차원에서는 테러조직을 포함한 비정부 조직과 국제기구, 국가가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정보화로 대변되는 21세기에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 파워에 입각한 가치의 공유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시정부 들어 퇴색
물론 나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 같은 전략의 한계 또한 자명하다. 미국의 가치를 전파할 수단이 없고, 할리우드 문화를 침략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이슬람 세계 등에 대해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작용할 여지는 많지 않다.
클린턴 정부 후반기 미국은 인종문제가 중심이 된 코소보 분쟁에 이 전략을 적용하려다가 좌절하고 국내외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군사력에 바탕을 둔 하드 파워 만을 강조하거나 일방주의에 입각한 홀로 서기만을 고집할 경우에도 미국의 안보는 보장되지 않는다. 세계화는 국경을 투명하게 하고, 정보화는 대량살상무기를 엄청난 속도로 전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9ㆍ11 테러를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의 ‘민영화’라고 부르면서 미국이 적을 양산해낼수록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테러의 가장 큰 교훈이라면 소외된 자들의 절규와 그들의 삶의 질에 대한 근본적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부시 정부는 테러사태 이후 일방주의적 성향에 다자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구사해야만 국제사회의 협력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보인다.
미국이 어떤 힘을 선택하는 게 옳았는지는 미국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큰 영향을 끼칠 것만큼은 분명하다.
홍 규 덕 (숙명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아메리카 핸드북 / 나이와 아미티지
조지프 나이(65)와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인 리처드 아미티지(57)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동아시아 정책의 차이와 공통점을 설명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그들은 한 프로젝트에서 같은 직책으로 경쟁을 하기도 했다. 통칭 ‘아미티지 보고서’로 불리는 미 국방대학 국가전략연구소(INSS)의 ‘미국과 일본: 성숙한 파트너십을 위한 전진’이라는 특별보고서가 그 결과물이다.
양당의 외교전문가가 총동원돼 10월 11일 발표된 보고서 작성에는 나이와 아미티지가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팀의 책임자로 참여했다. 초당파적 보고서를 만든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실천할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나이는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를 다녀온 뒤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20년 가까이 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78년 로버트 코헤인과 공동으로 상호의존론을 발표한 이후 수많은 국제정치 이론을 양산했다.
반면 아미티지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구축함을 타고 베트남전에서 무공을 세웠다. 예편한 뒤에도 사이공에서 철수작전을 맡았다. 국방정보국(DIA)과 중앙정보국(CIA)에서 해외공작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에서의 경력은 유사하다. 나이는 클린턴 정부에서, 아미티지는 레이건과 조지 부시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며 동아시아 정책 입안을 맡았다.
일본을 중시하는 전략관도 일치한다. 미국 패권의 독주를 위해 대항하는 세력균형을 막는다는 노선도 같다. 94년 ‘나이 보고서’는 아미티지 보고서의 원조격이다. 당시 나이는 이른바 바퀴살(Spokes)이론을 내세우며 구 소련 붕괴 후 가상적을 상실한 미일군사동맹을 도리어 강화하도록 했다.
중국의 확장과 한반도, 대만의 분쟁에 대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미 패권에 대항하는 중일 접근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미티지 보고서는 영미동맹수준으로의 격상을 기치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정보공유, 미사일방어 공동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결국은 공통된 전략목표를 추진하면서 방법론이 다른 민주, 공화당 대외정책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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