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으로’라는 영화가 고향에 대한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나는 모교를 생각할 때마다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1957년 나는 모교이기도 한 국립서울농아학교(당시 서울맹아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학생생활지도 교사를 하며 이른바 ‘문제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설득도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아내는 도사(?)가 되었다.
그때 즈음의 일이다. 문제학생에 대한 징계문제로 교직원 회의가 소집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에 대한 징계조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장애에 대한 사회와 가족들의 편견으로 삐뚤어져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경우 선생님의 입장보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또 학생생활지도 교사로서 누구보다 더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 학생도 그런 경우의 하나였고, 일부 선생님은 장애학생이니 개선의 기회를 주자고 했지만, 나는 장애보다는 바른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퇴학을 주장했다.
결국 그 학생은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지 10년이 지나 부산에서 직장인으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그 제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퇴학을 주장하던 나에게 원망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던 그 제자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50여년간 교직에 있으며 많은 장애아들을 만났고, 그들이 학교를 떠나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회가 주는 잘못된 도움과 동정의 눈길 때문에 장애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은 장애인이 능력을 채 발휘하기도 전에 ‘보호’라는 울타리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퇴학을 당했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 제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의 노력과 그 노력을 격려로 응원해 준 사회와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조화가 가까운 미래에는 일상적인 일이 되길 바라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다시 한번 느껴본다.
주신기·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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