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2002년1월 750포인트를 돌파한 뒤 2002년 중 1,000포인트에 올라설 겁니다. 특히 이번 대세상승 국면의 최고치는 1,240~1,440에 달할 것입니다”지난해 12월초 대한투자신탁증권 김병균(金炳均ㆍ56) 사장은 해외 금융 시장을 둘러본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종합주가지수가 650도 안되던 당시 김사장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그는 증권업계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대투증권 사장이 된 지 채 1년도 안 된 신참 CEO였다.
그러나 김 사장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지난 1월 지수는 그의 말대로 750선을 뚫고 780대에 올라섰다.
이후에도 지수는 상승 가도를 이어가 지난 18일에는 지수가 937.61까지 치솟았다. 앞으로 7%만 상승하면 그가 말한 1,000포인트가 달성되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조차 이젠 지수 목표치를 그가 말한 1,200~1,500으로 상향조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김 사장의 진면목은 자신의 예측을 회사 영업전략으로 연결시킨 대목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대세 상승기인 만큼 국내 기관들의 초대형 펀드가 장을 주도해야 한다“며 지난달 11일 ‘갤롭 코리아’ 펀드를 출범 시킨 것.
말이 질주한다는 뜻의 ‘갤롭’이란 이름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직접 작명한 것이다. 목표액은 무려 5조원이었다.
이 때에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아직 투신권으로의 자금 유입이 본격화하지 않은 터라 ‘5조원’은 말 그대로 ‘목표’로 그칠 것이라고 본 것. 그러나 김 사장은 벌써 8,500억원의 수탁고를 기록, 다시 한번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김 사장의 이러한 저돌적 성격과 일 처리는 사실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 역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금융기관장으로는 드물게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다.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 할 즈음엔 영자신문사의 기자가 됐다.
그는 모내기 취재 중 만난 남덕우(南悳祐) 당시 재무부 장관의 권유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그는 공직에 몸담아 경제기획원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까지 역임했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거쳐 지난해 3월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
김 사장이 취임할 당시 4,089억원이었던 대투증권의 자기자본 잠식 규모는 현재 1,000억원으로 줄었다.
특히 정부로부터 현물 출자로 받은 담배인삼공사 주식의 평가손 1,400억원을 빼면 사실상 자기자본은 플러스로 돌아선 셈이다. 순이익도 1억원의 순손실에서 2,800억원의 순이익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도 멀다.
대투증권은 2000년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관. 하루빨리 부실을 털고 흑자를 내 공적자금을 갚아야 한다.
그래서 김 사장의 표정은 최근 증시 활황에도 불구하고 밝지 만은 않다. 매일 아침 5시30분에 기상,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달리며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루느냐 하는 것이다.
김 사장은 최근 강세장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지수 네자리수 시대’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가 혹독한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결과 IMF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차별화한 경제 구조를 갖게 됐고 이에 따라 증시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것.
김 사장은 “기업의 본질 가치가 상승하고 기업 지배구조 및 경영이 투명해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뚜렷하게 호전되고 있어 조만간 지수 1,000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저금리 기조로 주식 투자 메리트가 부각되고 있어 시중 유동 자금의 증시 유입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사장은 지방 지점까지 순회하며 말단 직원들과 직접 만나 술자리를 함께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머리와 마음이 한시도 쉬어선 안됩니다.
머리로는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마음으로는 늘 직원들을 배려해야 하죠” 김 사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CEO상이다.
그러나 이미 김 사장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마음을 가진 CEO라는 게 김광두(金廣斗) 서강대 교수 등 지인들의 평이다.
/박일근 기자
●약력
▲전남 보성·56세 ▲서강대 영문학과 ▲재무부장관 비서관 ▲반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경제기획원 심사평가심의관 ▲공정거래위 상임위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가족 1남1녀 ▲취미 테니스 ▲주량 소주 1~2병
■대한투자신탁증권은
대한투자신탁증권의 역사는 사실 우리나라 투자신탁 시장의 역사나 마찬가지이다.
대한투자신탁증권의 전신은 1968년 12월 설립된 한국투자공사. 당시 정부는 국내 투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뒤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했다.
본격적인 증권투자신탁업무가 시작된 것은 70년 5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초의 투신상품으로 인증을 받은 ‘안정성장 1월호’가 나온 것도 이때이다.
지금처럼 대한투자신탁이라는 이름을 걸게 된 것은 77년 한국투자공사가 대한투자신탁과 증권감독원으로 분리된 이후다. 이후 대한투자신탁은 투신사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2000년6월 증권사로 전환한 대한투자신탁증권을 아직도 투신사로 부르는 고객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점이 73개에 달하는 대한투자신탁증권의 현재 자산운용규모는 총 30조원, 고객수는 300만명에 달한다.
굴곡도 있었다. 2000년 대우 관련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며 금융불안 등이 야기되자 2조9,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긴급 수혈받은 것. 이 때문에 현재 대한투자신탁증권은 사실상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정부투자기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99년말~ 2000년초 주식형 상품에 가입했다 아직도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고객이 적지 않은 점도 신뢰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투자신탁증권은 앞으로 투자신탁업무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업무 영역인 기업금융업무와 증권업무에서도 신상품 개발과 서비스의 다양화로 선도적인 종합투자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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