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깽깽이풀, 노루귀, 홀아비바람꽃, 변산바람꽃….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이 꽃들은 봄이 되면 우리의 산과 들에서 피고 지고를 거듭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식물들입니다.
흔히 백목련이나 개나리로 봄의 꽃 소식이 시작되지만 저는 올 봄엔 변산바람꽃을 찾아 나서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변산바람꽃이 하늘 하늘 저 남도의 산자락에서 가녀린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우는 모습들을 처음 만났을 때, 참 장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이 부지런한 꽃은 벌써 꽃가루 받이를 끝내버렸고 그 자리에선 벌써 열매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 뒤를 수많은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납니다.
분홍빛, 흰빛, 보랏빛 꽃송이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노루의 귀처럼 말려 흰 솜털을 가득 단 잎을 뒤늦게 따라 보낸 노루귀, 순결한 흰색의 꽃들을 외롭고 쓸쓸하게 하나씩 달고 있는 홀아비바람꽃, 보라색 꽃모양이 독특한 가지가지의 현호색 등등.
지금 숲으로 가면 이 모두를 만날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봄에 꽃을 피우는 풀들은 유독 키가 작습니다. 아무리 풀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크게 자라는 풀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입니다.
왜 봄꽃들은 키가 작을까요? 바로 살아가는 전략의 문제 때문입니다.
세상에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꽃들도 사실은 공정하고 엄격한 자연 속에서 서로 경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빛을, 때론 수분을, 때론 양분을….
그런 의미에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아직 잎을 내지 않아 봄볕이 그대로 쏟아지는 봄의 숲 속은 이 경쟁에서 아주 유리한 시기이지요.
그러니 서로 키를 올려가며 볕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데 사용하는 중요한 전략은 키를 낮추고, 그 대신 에너지를 다른 경쟁자들이 숲 속에 출현하기 전에 빨리 꽃을 피우고 결실까지 끝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곤 느긋하게 잎을 내고 천천히 영양분을 만들어 저장하기도 하죠. 물론 성격이 급한 식물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늦은 봄이나 여름철 꽃들은 대부분 잎을 내고 키를 키우며 나중에 꽃이 달립니다.
때를 같이 하여 자라는 경쟁식물들보다 좀 더 많은 볕과 공간을 차지하느라 자꾸 키를 높이고, 또 우거져 눈에 보이지 않는 꽃들을 곤충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느라 애를 씁니다.
키 작은 봄꽃들에게는 불필요했던 노력이지요.
그러고 보니 봄꽃들의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면 더욱 어렵고,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하면 성공이 더욱 가깝다고 하죠.
사람 살아가는 이치와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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