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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동성-목소리를 높여라 / 축구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만국공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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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동성-목소리를 높여라 / 축구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만국공통어'

입력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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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일이다. 외국에서 몇 년 살다 온 것도 아닌 ‘토종’이, 게다가 별로 활달한 성격도 아닌 녀석인데, 조카는 일 년이면 한, 두차례씩 서울에 오는 외국인 친구들을 안내하느라고 바쁜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만난 친구들이냐고. 조카가 들려주는 사연인즉 이랬다.1998년 여름이었다고 한다. 제대하고 3학년 2학기 복학을 앞둔 조카가 난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상상을 짓뭉개는 파리의 옹색한 풍경을 뒤로하고 영국에 도착했을 때까지 조카의 여행은 불안하기만 했다.

턱없이 비싼 런던의 물가,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해 뒤틀려버린 사람의 자존심을 연상케 하는 그들의 오만한 태도…. 그런데 이상하게 꼬여버리는 여행길에서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투숙한 런던 외곽의 유스호스텔에서 잊지 못할 추억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포츠라는 게 참 묘해요.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라고 할까.’

마침 프랑스 월드컵 한국과 멕시코의 E조 예선이 있던 날이라 조카는 TV라도 볼 겸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비로 나가 단 몇 분일지언정 자국 선수들의 경기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채널 다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간청했다고 한다. 바로 지금 한국과 멕시코전이 열리고 있다고.

슬금슬금 낯선 동양인을 바라보던 젊은이들이 채널 선택권을 조카에게 넘겼고, 하석주의 프리킥골과 곧이은 퇴장, 그리고 1:3의 분패로 끝나버린 경기를 함께 애통해하는 것으로 그들과의 남다른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밤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 의기투합된 아홉 명의 젊은이들은 각자 예정되어 있던 여행 경로를 그 자리에서 바꿔버렸다. 나라도 인종도 다른 사람들의 한 달여에 걸친 패키지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로, 터키의 카파도키아 유적을 거쳐 인도와 네팔로…….

조카의 이야기는 내게 흥미로움을 넘어 묘한 감동을 주었다.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은 나는 출판이 세상과 소통하는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방식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지적 성과이든, 아니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든 한 권의 책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독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안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런 내게 조카는 책이 수행하는 정적인 방식이 아닌, 아주 역동적이고 즉각적인 소통의 한 통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땀 흘리며 뛰는 선수들이 있고, 열광하는 관중들이 있는 감동의 한마당.

이제껏 운동 경기를 즐기지 않아온, 그래서 ‘대한민국 16강 진입’에 목매는 현실이 도통 실감나지 않는 나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이번 월드컵 대회를 요모조모 눈여겨 볼 작정이다. 그러다 보면 역동적인 몸놀림으로 구현되는 스포츠의 미학을 얼마쯤은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성급하게도 나는 그 색다른 체험이 내가 책을 내고 독자들과 만나는 작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며 대책 없이 행복해진다.

/김혜경·도서출판 푸른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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