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광대’로 살겠다며 배우로, 연출자로 지내던 내가 책임운영기관으로 바뀐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은 지 어느새 삼 년이 흘러가고 있다.예술전문인으로서 극장 경영을 한다는 일이 간단치 않은데 지난해 말 어느 날 극장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농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극장장님! 배우시절 모습이랑 달라 보이세요.”
그때 나는 “허허” 웃고 말았지만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예술에의 드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고 잃어버린 전통예술을 찾아 전국을 떠돌던 그 열정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우리의 소리인 판소리를 세계의 음악으로 되살리고자 했던 꿈을 지켜가고 있는지.
때마침, 나는 그 무렵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발행)와 만났다.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꼽힐만한 26인이 짝을 이뤄 세상살이를 풀어낸 대담집이었는데 글이 아닌 말로 녹아낸 삶의 진솔함이 내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와 딸 다희의 대담은 딸을 둔 내게 부러운 부녀상을 제시했고, 생물학자인 최재천교수와 생태시인 최승호와의 대담은 욕심을 비우고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정진해 가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고교동창인 윤윤수(휠라코리아 회장)와 소설가 최인호가 나눈 문화담론 중 “전통문화 자체를 외국에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서정성을 고양시키는 작업이 유효하다”는 말은 당시 국립극장 기획작품인 ‘우루왕’의 해외 공연을 앞두고 고민하던 내게 연출자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했다.
좋은 끝은 반드시 가시밭길 저 너머에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준 고마운 책.
신화, 생태, 동양학, 돈, 문학, 예술, 시, 여성, 출판, 상상력, 명상, 문화, 이성 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구수한 입담에 담아 슬금슬금 잘 읽히는 책,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는 내가 일상 속에서 환기를 원할 떄면 즐겨 펼치고 싶은 책이다.
/ 김명곤 국립극장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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