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개의 거짓말‘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는 법.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사는 법.’
시리아 작가 라픽 샤미(56)의 소설 ‘1001개의 거짓말’(문학동네 발행)은 고전 텍스트 ‘아라비안 나이트’를 현대적으로 복원해낸 것이다.
‘천일야화’에서 세헤라자데는 천 하루동안 밤마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1001개의 거짓말’에서 청년 사딕은 밤마다 서커스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 앞에 이야기 꾸러미를 술술 풀어놓는다.
꾸러미 안에는 1,000가지 하고도 한 가지의 이야기가 더 들어 있다.
사딕은 거짓말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말도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를 보고 팔을 쭉 뻗으면서 “엄마!”라고 불렀다.
당연하게도 그가 무대에서 벌이는 이야기의 축제는 모두 거짓말이다. 그러나 사딕이 들려주는 거짓말은 지친 인생을 다정하게 위로해준다.
서커스단을 찾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순수한 웃음을 선물로 안겨준다. 그래서 소설의 원제처럼 사딕은 ‘참된 거짓말쟁이’가 된다.
세헤라자데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야기꾼이 되었다. 사딕은 사랑을 위해서 서커스단의 광대가 된다.
공연을 위해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찾은 줄타기 곡예사 말라를 보고 반해버렸다. 사딕은 말라를 좇아 서커스의 이야기꾼이 되었다.
서커스 무대에서 그는 자기 할머니 얘기를 들려줬다. 물론 거짓말이다.
“할머니의 뛰어난 미모를 걱정한 외증조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수녀원에 보냈다. 때마침 친증조할아버지도 혈기가 넘치는 아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눈이 맞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함께 수녀원을 도망쳐 나와 결혼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지만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집안 지하실에 몸을 숨겼다. 군인들이 들이닥쳐 할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며 총을 들이대자, 할머니는 대담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숨겼다! 지금 내 밑에 숨어 있어! 어서 와서 데려가봐!” 할머니의 말에 군인들은 피식 웃고는 집에서 나갔다. “그렇게 할머니는 진실 같은 거짓말로 남편을 구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정말 같은 거짓말’이 숨어 있다.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사딕은 “너의 이름은 사딕이 아니라 수배중인 페잘”이라고 다그치는 장교에게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모두 거짓이라고요. 저 자신이 거짓말 자체죠.”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소설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때 난 분명히 사딕이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맺는다.
그렇다면 사딕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 라픽 샤미가 들려주는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샤미는 “문학은 하나의 술책”이라고 했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하고 외면하는 일상을 문학은 눈여겨보고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야기꾼 샤미의 말잔치는 소중하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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