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DJ가 통하던 때가 있었다.다른 일을 하며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의 특성상 어느 누가 들어도 무리가 없도록 DJ는 말도, 음악도 무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듣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프로그램도 장수한다.
13년째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후 6시~8시)를 진행하고 있는 배철수(49)와 이달 초 방송 7년을 넘긴 KBS2 FM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오후 8시~10시)의 이본(30)이 그렇다.
같은 시간대 청취율 1위를 누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나이, 성별, 프로그램의 성격 등은 다르지만 생각에는 공통점도 많았다. ≫
■ 배철수 / MBC FM '…음악캠프' 13년째
배철수는 평소에도 ‘~습니다’ 체로 말한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의 오랜 버릇”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물으면 일단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난 다음 설명을 붙인다. 처음 들으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시원해서 좋다.
남들이 말하기를 꺼리는 주제일 경우 통쾌할 때도 있다. 유심히 들으면 한국어고 영어고 발음이 상당히 정확하다.
배철수는 방송 중에 자신의 의견을 많이 드러낸다. 처음보다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노래 못하는 가수, 음악성이 떨어지는 가수를 직설적으로 거명한다.
“저는 양비론은 싫어합니다.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닙니다. 오락 프로그램이잖아요. 적은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역시 자르는 듯한 대답이다.
방송이니까, 듣는 사람을 의식해서 평소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선을 넘는 적도 없다. 벌써 방송연예경력 30년이다.
적도 많지만 그의 편도 많다. 그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나이로는 20대가 가장 많지만, 10대에서 40대까지 폭 넓다. 음악 때문이다.
FM의 팝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진 지금, 100% 팝으로 선곡하는 배철수는 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음악적 지주’ 역할을 한다.
MBC FM 최상일 부장은 “팝 프로그램으로 주요 시간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DJ 배철수 캐릭터 덕분”이라고 말한다. DJ로 10년을 맞았을 때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DJ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매일 2시간씩 들을 수 있잖아요, 돈도 벌면서.”
다른 장르에 비해 세대간 격차가 유난히 큰 대중 음악이지만 그는 요즘 음악을 듣데 의식적인 노력조차 필요 없다고 한다.
“나이든 사람의 고리타분함이 싫어요.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죠.”
아직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냥 기분이 좋다는 건, 그 좋은 기분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는 건, 나이를 먹었으나 나이든 사람 같지 않은 그의 장점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는 좋은 음악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즐거움을 선사하는 DJ로서의 매력임에 틀림없다.
■ 이본 / KBS 2FM '볼륨을…' 7년째
이본도 배철수만큼 끊어내듯 말한다. 명쾌함이 지나쳐 때로 단순해 보일 정도다.
방송 중 뒤로 넘어갈 듯 깔깔대며 웃는 웃음도 다른 DJ에게서는 절대 들을 수 없다.
언젠가 한 청취자로부터 “조신하지 못하다”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7년을 한결 같았던 마지막 멘트 “여러분 사랑해요”와 함께 그의 웃음은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 항의 엽서를 소개하며 “웃는 것까지 제어 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당돌함과 7년 세월 덕이다.
이본이 7년 동안 같은 프로그램 DJ를 한 것은 불가사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그에 대한 선입견이 들어있다. 건방지고, 제 멋대로이며, 술과 남자를 좋아한다는 등등.
처음 DJ를 맡았을 때도 “네가 무슨 8시 생방송을 해, 밤에 놀아야지”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기가 발동했다. DJ를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드라마 캐스팅 제의를 받은 적도 있지만 포기했다.
7년 동안 거의 매일 밤 집으로 다음날 소개할 사연들을 가지고 가 자기 전에 읽어보았다.
7시간 방송을 하고도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을 만큼 체력이 좋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확실히 그의 이미지는 7년 DJ를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DJ로서 이본의 최대 장점은 친화력이다.
초대 손님에게도, 듣는 사람들에게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배철수처럼 역시 포장하지 않는다. 매일 1, 2개의 코너가 있는 그의 프로그램에는 초대 손님이 많다.
함께 일하는 박영심 PD는 “부드러움을 내세우는 다른 여자 DJ와는 달리 카리스마가 있어 게스트를 장악한다”고 말한다.
이본은 주청취자인 10대에게 “함께 기뻐하고 때로 조언도 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좋은 말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 하기보다는 한바탕 쏘아대거나 똑 부러지게 정리해 대리만족을 주는 식이다.
20대를 ‘볼륨을 높여요’와 함께 보낸 이본이 30대가 됐듯이 이제는 청취자의 연령대도 넓어졌다.
10년을 채우라는 얘기도 있지만, 언제까지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끝나는 날을 생각하면 벌써 눈물이 나려고 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