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A사는 음식물쓰레기 발효장치를 개발했다는 재료로 시가총액을 단숨에 300억원이나 늘렸지만 당시 이 발효장치의 판매 실적은 1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1999년에는 계면활성제를 이용한 에멀전 원료 개발을 재료로 주가가 2,000원대에서 2만원대까지 10배 이상 단기 급등했다가 1만원대 밑으로 밀렸다.
2년 전에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플랜트를 수출한다고 떠들었지만 계약여부 조차 불투명한 것으로 드러나 회사는 결국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냉각캔과 매연저감장치, 인슐린 패치제품, 폐수처리장치, 보물선에 이르기까지, 증시에는 정보에 굶주리고 작전 편승도 마다하지 않는 개미들을 노린 재료가 늘 넘쳐난다.
출처도 불분명한 외자유치를 흘리고 실적을 부풀려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을 현혹하는가 하면 상용화여부도 불투명한 기술을 특허획득 운운하며 개미들을 유혹한다.
◈ 사회책임투자(SRI)가 뜬다
이 같은 부도덕한 기업들의 ‘전과 기록부’를 만들어 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궁극적으로 부도덕한 기업을 내쫓자는 주장이 증시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른 바 ‘사회책임투자(SRIㆍ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론이다.
SRI는 최고경영자(CEO)의 기업가정신이 투철하고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기업을 선정해 이들 업체로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하는 기법으로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됐다.
술ㆍ담배ㆍ도박ㆍ군수 등 반사회적인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최근에는 인권ㆍ고용 등의 주제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실제로 1980년대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대항해 남아공 관련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수하는 운동을 벌여 성가를 올렸다.
천주교 대안경제연대와 개신교 단체들이 참여한 ‘SRI운동(이사장 함세웅 신부)’은 사회책임펀드(SRFㆍSocially Responsible Fund) 결성을 위한 독자적인 기업 평가모델 구축에 나서는 한편 첫 사업으로 여성고용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SRF를 결성키로 하고 여성부와 협의에 나섰다.
증권업계에서도 동조 움직임이 일고 있다. 모 증권사의 한 중견급 애널리스트는 “소위 전문가들이 밝은 곳만 말하고, 어두운 곳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으려는 것은 투자자들을 배반하는 것이자 증시 타락을 방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SRA(S.R.Analysts) 모임을 결성, 과거 기업이나 대주주가 부도덕한 행위를 한 전력이 있는 기업의 명단을 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SRI의 검증된 수익성
미국의 유명 펀드평가기관인 리퍼사와 모닝스타사는 연초 보고서에서 조사대상 SRF 46개 가운데 63%인 29개가 투자수익률 최고 등급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자산규모 1억달러 이상 SRF 16개 가운데 13개사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지난해 말까지 10년간의 연평균 수익률 부문에서는 종교자본 인덱스펀드인 ‘도미니400’이 13.77%를 기록, 같은 기간 S&P500 수익률(12.95%)을 압도했다.
이 같은 실적에 힘입어 펀드 규모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비영리 조직인 사회책임포럼이 연초 집계한 SRF 규모는 총 2조300억달러(지난해 말 기준)로 2년 전인 1999년(1조4,900억달러)보다 36% 증가한 반면 전체 펀드자산 총액은 같은 기간 16조3,000억달러에서 19조9,000억달러로 22% 느는 데 그쳤다.
◈ 저항ㆍ부작용 우려도
하지만 저항도 만만찮다. SRI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한신대 김항섭(종교문화학) 교수는 “몇몇 투신 운용사에 평가모델 작성을 의뢰했더니 기업 고객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SRI의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투신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국내 증시 여건상 결점있는 기업들을 다 잘라내고 나면 투자 풀 자체가 빈약해질 수 있다”며 “기업선정의 객관적 기준과 투명한 절차, 엄정한 투자원칙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선의를 가장한 또 다른 ‘작전’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증시 안팎의 저항이나 기술적 난관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증시가 선진화하고 투명해지려면 SRI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