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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좌절…'대세론' 40일만에 '자진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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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좌절…'대세론' 40일만에 '자진 퇴장'

입력
200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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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인제(李仁濟) 고문에겐 불과 40일 사이에 세상이 뒤바뀌었다.3월9일 민주당이 제주에서 대선후보 경선의 첫 깃발을 올릴 때만해도 그는 당 대선주자 중 여론조사 지지도 1위를 내주지 않는 유력 주자였다.

그러나 경선 시작 후 꼭 40일째인 17일 그는 스스로 대권의 꿈을 접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고문의 좌절기는 ‘신세대 정치 스타’의 길을 걸어 온 그의 정치 이력만큼이나 극적이다. 구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49세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이미지로 돌풍을 일으킨 뒤 15대 대선에서 500여만 표를 얻은 것이 5년 전 일이다.

대선 낙선 후 8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군소정당이었던 국민신당 상임고문에서 일약 여당 대선주자로 변신,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1998년 8월28일 구 국민회의와 국민신당 간의 합당이 그 계기였다. 그 뒤 지금까지 그는 충청권의 지역세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대세론을 키워 왔다.

올 초 당 쇄신 파동 때는 4월 조기 전당대회론을 밀어붙여 관철시킬 정도로 입지가 탄탄했다.

이 때만해도 이 전 고문측은 조기 전대론에 우선 순위를 둔 탓에 개혁그룹의 요구로 새롭게 도입됐던 국민경선제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반 국민 지지도뿐 아니라 동교동계 구파의 지지를 업어 조직면에서도 절대 우위를 차지, 그의 자신감은 결코 허장성세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고문은 민주당이 대선전략의 승부수로 던진 국민경선제의 최대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 예상과 달리 2위로 내려 앉으면서 이상 조짐은 시작됐다. 다음 날 울산 경선에서 PK(부산 경남)출신 노무현 후보에게 다시 1위를 내줄 때만 해도 지역바람 탓이려니 했다.

결정타는 14일과 16일 잇따라 터져 나왔다.

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를 앞섰다는 14일의 문화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이어 노 후보를 1위로 올린 16일의 광주 경선은 ‘이인제 대세론’의 퇴락을 가져 온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 뒤로 그는 고향인 충청권 지역 경선에서만 1위를 했을 뿐 나머지 전 지역에서 2위에 머물러 대세론의 주인 자리를 노 후보에게 내줘야 했다.

일반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국민경선제에서 조직은 바람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이 고문측은 물론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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