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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이 노인들을 부른다…기피대상서 주인공으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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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이 노인들을 부른다…기피대상서 주인공으로 부각

입력
200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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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매체는 어린이를 선호해온 것만큼 역으로 노인을 기피해왔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꿈이라면, 노인은 반기고 싶지 않은 미래다.‘꿈의 공장’인 영화가 노인을 주인공으로 다루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감독들이 노인들에게 시선을 맞추기 시작했다.

‘집으로…’(이정향감독)는 충북 영동의 김을분(77)씨를 등장시켜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될 ‘죽어도 좋아’(박진표감독)는 박치규(73), 이순예(71)씨의 거짓말처럼 황홀한 신혼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 죽어도 좋아 / 황혼의 性… 자연스레 담아내

'믿기지 않는, 그러나 실재하는 우리 곁의 노인들'

‘죽어도 좋아’는 “너무 좋아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두 노인의 신혼 생활을 그리고 있다.

박진표(36) 감독은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한 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사건과 사람들’ 등을 제작한 다큐 전문 PD.

97년 iTV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다 지난해 8월 사표를 내고 영화를 만들었다.

“죽기에는 너무 절실한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다큐 제작 중 알게 된 노인들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옮겼다.

이야기 자체가 두 노인의 경험담인데다 감독은 대강의 설정만 해놓았고, 접근이 쉬운 디지털 카메라와 자연 조명으로 찍어 다큐 냄새가 강하다.

배우자와 사별한 박치규, 이순예씨는 공원에서 만나 말이 통하자 곧바로 살림을 합친다.

그날부터 둘은 부부가 됐고 아내는 남편에게 장구를 치며 ‘청춘가’를 가르치고, 남편은 글을 모르는 아내에게 노래 가사를 받아쓰게 한다.

부부의 잠자리는 매우 잦다.

7분간의 롱테이크로 “이렇게 하면 돼” “아이구 좋다”를 연발하다 “아이구 죽겄네”로 끝을 내는 섹스를 보여주기도 하고, 오랄 섹스도 묘사된다.

섹스는 그들 일상의 활력소이자 생명의 증거이다. 할아버지는 잠잔 날을 달력에 표시하고, 때로 ‘낯(낮)거리’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다 아내가 집을 오래 비우면 할아버지가 삐쳐 말도 하지 않고 싸우다 화해하고 또 한번 잠을 잔다.

아내가 앓아 누우면 할아버지는 백숙을 끓여 싫다는 아내에게 권한다. “이게 부부여.”

영화는 ‘노인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월한 존재’라는 생각이 실은 그들의 본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그러나 영화가 일부 인사들에게 공개된 후 주인공 두 사람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노인의 성에 대해 ‘추하다’ 혹은 ‘재미있다’는 주위의 호기심어린 시선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는 것.

감독 역시 “선정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려는 시각이 부담스럽다”고 할 정도가 됐다.

물론 소재는 성(性)이지만 결코 선정적이지도 추하지도 않다. 탐사 저널리즘에 10여년을 바친 감독의 내공이 결코 헛되 보이지 않는다.

● 집으로 / 잊혀진 기억… 자극 중년관객도 끌어

'존재할 듯한,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로서의 할머니'

영화 ‘집으로…’의 흥행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중년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며 눈물을 훔치는 것은 이 영화가 이제는 잊혀진, 그러나 기억 저편에 분명히 존재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관객들에게 영화 속 할머니는 “내 기억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 우리의 할머니”이다.

그렇다면 젊은 관객층을 끌어 모으는 요인은 무엇일까. 역으로 존재하지 않는 할머니에 대한 일종의 환상 효과이다.

평론가 심영섭씨는 “요즘 영화에서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은 옌벤 처녀(‘파이란’)나 조폭(‘조폭 마누라’)처럼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인물들이다.

아마 ‘집으로…’에서 할머니 대신 어머니를 설정했다면? 아마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들었을 것이다.

무한정한 모성이라는 일종의 판타지 창구로서 할머니가 설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현실에서 어머니 세대는 자식들에게 억압적이며, 따로 사는 할머니는 기억 속에 존재한다 해도 영화처럼 맹목적으로 희생적인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영화 속 할머니는 판타지다.

그럼에도 할머니라는 ‘추상적’ 모성의 대명사는 중년에게는 아련한 기억으로, 젊은이들에게는 판타지로 일종의 신드롬마저 낳을 것 같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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