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정치인, 타협의 예술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빔 콕 총리(63)가 16일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학살에 대한 국가 책임론을 들며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다.문제가 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은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이 지역에서 민간인 7,500여 명을 집단학살한 사건. 네덜란드 전쟁기록연구소(NIOD)는 지난 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엔과 네덜란드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당시 이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임무를 맡았던 네덜란드가 위험한 지역이라는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력 110명만을 파견해 비극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콕 총리는 이날 비상내각 회의 직후 “국제 사회는 실체가 없으며 그래서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질 것이다”라며 사퇴했다.
지난해 8월 3선 연임이 거의 확실한 상태에서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올 5월 총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 ‘떠날 때를 아는 정치인’이란 찬사를 들었던 그는 이번 사퇴로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란 이미지까지 얻게 됐다.
1994년 총선 승리로 18년 기민당 집권을 끝내고 총리에 오른 그는 지난 8년 동안 3당 연립정권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타협의 예술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좌파적 성향을 띠지만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적절히 혼합한 정책으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로부터 ‘제3의 길 설계사’란 칭송도 들었다.
최근에는 잇단 혁신적 입법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2000년 10월 매춘부 공식직업 인정, 11월 세계 최초의 안락사 인정, 지난해 4월 동성간 결혼과 입양을 법제화하는 새 혼인법 발표 등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위적 사회법을 통과시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7일자 사설에서 "네덜란드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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