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논쟁이 불 붙기 시작했다. 논쟁의 중심 축은 재계와 통화당국인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최근 잇따라 “통화량 과잉 공급” “경기 과열 우려” 등을 제기하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재계는 “선제적 금리인상은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현 경기 국면에 대한 인식 차이와 거시경제정책 기조 전환 논쟁은 결국 금리 인상 시기의 문제로 귀착되는 분위기다.
◈ 한국은행
부동산·가계대출 급증…금융시장 안정 위협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정부ㆍ민간연구소보다 훨씬 높은 5.7%로 내놓고, ‘유동성(돈) 과잉’을 공개적으로 걱정하고 나서면서 경기과열 우려를 본격 제기했다.
박 승(朴 昇) 한은 총재는 16일 “하반기 수출ㆍ투자가 본격 회복되면 경기 과열 위험이 있다”며 과열 우려를 표면화했고, 한은 측은 “최근 잠재성장률(5%대 초중반ㆍ물가상승을 감안한 적정성장률)을 웃도는 성장률 전망치를 전격 발표한 배경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기 과열을 걱정하고, 가급적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기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은은 현재 수출ㆍ설비투자 등 실물경제 측면에서는 과열 조짐이 없으나 금융시장에서는 단기 유동성 과잉과 이로 인한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시장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금융시장 안정이 위협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박 총재는 특히 “통화량 과잉 팽창 우려가 있으며, 현 수준보다 더 풀리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통화량은 금리인상을 통해서만 흡수할 수 있는데, 4월 수준을 초과하지 않으려면 당장 5월에 콜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최근 신규 가계대출금의 60%이상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나면서 ‘유동성 과잉=자산가격 폭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가계 자금 가수요→가계 대출증가→가계의 부동산ㆍ주식 투자 증가→자산가격 급등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 한은이 일찌감치 경기과열 경고에 나선 것은 정책변화가 효과를 나타내기까지의 시차때문. 통상 금리인상이 6개월~2년 후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올 4ㆍ4분기 4%에 육박하는 물가를 잡으려면 지금 당장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은 관계자는 “민간 연구소 등에서는 당장 (물가가) 괜찮은데 왜 금리를 올리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내년 물가가 4%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도 당장 금리인상에 나서는 데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심각한 불황과 실업을 겪어온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궤도에 오르려면 확실한 힘을 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스프링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듯, 지금 정책대응을 잘못하면 경기가 원점(침체국면)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한 금융통화위원은 “경기를 밀어올려야 하면서도 과열을 걱정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어떤 금리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 재계
이제 겨우 회복단계…수출·투자 갈길 멀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17일 ‘경제전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5.4%로 전망했다.
이전 전망치 4.6%에 비해 무려 0.8%포인트나 상향 조정한 수치. 물론 단서가 있다. “수출회복 시점과 관련된 잠재적 불안요인을 감안하면 실제는 전망치보다 낮아질 수 있다.”
재계의 현 경기 국면에 대한 진단은 “회복 단계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과열은 분명 아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소비증가세가 경기 회복을 대변하고 있고 부동산 경기 과열이나 가계대출 급증 현상이 경기 과열 우려를 부추기고 있기는 하지만, 수출이나 기업 설비투자는 아직 본격 회복 국면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열린 전경련 원로자문단 회의에서도 재계의 입장은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은행의 경기상황 진단과 전경련의 입장은 어떤 차이가 있나?”(이승윤 전 부총리) “한국은행이 지난해말 3.9%로 발표한 올 경제성장률을 5.7%로 수정한 것은 금리인상의 시그널로 간주된다.
서비스 부문이 성장을 주도하는 국면에서 금리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재계는 이 같은 진단을 토대로 “선제적 금리인상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자칫 섣불리 긴축 정책에 나설 경우 수출과 설비투자를 크게 위축시켜 경기회복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경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회사채 금리를 기본 전망치보다 높게 책정하더라도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는 내용의 거시경제모형을 이용한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재계도 물론 부동산 과열, 가계 대출 급증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표명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미시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거시정책(금리 인상)을 동원하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주장한다.
물가 불안 역시 유가 상승 등 공급 측면의 충격이 원인인 만큼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물가 안정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재계 역시 무작정 ‘팽창’ 또는 ‘중립’ 정책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지난달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는 저금리 정책 유지를 건의하면서 “경제성장 동력이 소비와 건설에서 투자와 수출 중심으로 전환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적어도 4월 산업활동동향이나 5월 수출 및 수입 추이를 봐가며 정책기조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콜금리 언제 얼마나 올리나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언제, 얼마나 올릴까.
박 승(朴 昇) 한은 총재가 이달 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시장은 금리 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데 이어 16일 하반기 경기과열 우려를 본격 제기하면서 콜금리 인상시기와 폭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총재는 “시장이 기대하는 금리 인상 시기와 실제 인상 시기의 격차는 3개월 이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시장에서 6월쯤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전후 3개월 이내, 즉 3월에서 9월 사이에는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말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15일을 기점으로 한은 내부에 경기과열 우려의 시각과 금리 조기인상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정부ㆍ재계 일각에서는 수출ㆍ투자 등 실물경기 회복세를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단기 유동성 과잉 등 금융시장 문제를 절대 간과해선 안된다”며 5월 인상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통화정책이 실기하면 내년 물가는 4%를 넘어 한은의 중기 물가관리 목표(2.5%)를 지키기 힘들게 된다”며 “시장에서는 이미 채권 금리가 대폭 오른 상태라 콜금리를 인상해도 시장 충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는 장기 침체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온 만큼 과열 아우성이 나올 정도의 ‘빅 푸시(big pushㆍ부양조치)’가 필요하다”며 금리인상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5월 금리 인상 여부는 4월말 경기 지표가 나온 다음에야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5월에 인상한다면 0.25%포인트 정도로 시장에 메시지만 주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고 하반기에 1~2차례 더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5월에 인상하지 않는다면 늦어도 6~7월에는 한차례 올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재경부 "부분적으로만 과열"
현재의 경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건설과 고급 소비재 등에서 부분적으로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과열은 아니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전윤철 부총리가 17일 “거시정책의 큰 틀을 유지하겠지만 하반기에는 물가문제를 걱정해야 한다”고 밝힌 것에서 보듯 부분 과열이 경제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재경부가 책임지는 재정정책의 큰 방향은 이미 ‘경기 부양’에서 ‘중립’으로 전환한 상태다. 재경부 관계자는 “재정의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려던 방침을 지난 달 중순부터 정상 집행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그러나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해 ‘저금리 기조’에 종지부를 찍고, 거시정책을 ‘완전 중립’으로 전환하는 것에는 유보적이다.
5월부터는 부동산 대책과 가계대출ㆍ신용카드 발급억제 등 정부가 내놓은 미시적 조정대책이 효과를 발휘해 건설과 소비의 거품이 가라앉기 시작할 것이므로, 굳이 통화정책 기조까지 서둘러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하반기에 내수가 안정되고 수출이 늘어나 6% 내외의 성장을 이룬다면 경기 과열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의 금리인상은 시기가 문제일 뿐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는 견해가 정부내에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설비투자와 수출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기 전까지는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금리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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