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지난 지 세 시간이 되었다. 2시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 주위 어딘가에 양철통이 버려져 있는 모양이다. 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제법이다.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이따금 손톱을 들여다보고 이마를 문지르고 녹차 잔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원고는 아침까지 보내놓기로 했는데 빗소리나 듣고 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가장 할 말이 많아야 하는 대목인데 나는 이 질문에 늘 전전긍긍이다. 최선을 다해 이렇게 말해보아도 아닌 것 같고 저렇게 말해도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등단한지 1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일찍부터 작가가 아닌 나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음에도 그러하다. 어쩌면 해답은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정확한 것, 시비가 가려지지 않는 것,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이를테면 말해질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이 세계에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노트에 문장을 지어보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의 부유
어머니는 이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였다.
젊은 시절 어느 한 여름날 어머니 혼자서 산밭을 매러 갔단다. 그런데 처음 보는 늙은이가 밭을 매고 있더란다. 누구냐고 물어도 말도 안하고 부지런히 밭을 매더란다. 어머니는 고마워서 싸 가지고 간 새참도 같이 먹었단다. 그 늙은이는 어머니 옆에서 종일 함께 밭을 매고는 날이 저물자 가야겠다고 일어서더니 금세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단다.
혼자 터벅터벅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상해서 역시 다 늙은 고모에게 그 늙은이 이야길 했더니 고모가 그 늙은이가 이러저러하더냐 물어왔는데 비슷하더란다. 이것 저것 묻던 고모가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 늙은이는 다름 아닌 그 밭의 전전 주인으로 한 여름날 밭을 매다가 일사병으로 죽은 이라고 하더란다.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다. 불쌍도 하지. 그래 죽어서도 밭을 매고 있다니. 그깟 놈의 풀이 좀 자라면 어쩐다고.
어머니는 또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너희 외갓집을 지을 때 너희 외할아버지가 꿈을 꿨는디 글쎄 황소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막 일어날라고 허더란다. 생각해봐라. 다른 짐승도 아니고 힘센 황소가 막 일어날라고 하는 참이었으니 얼매나 기운이 뻗치는 때였겄냐. 그 집 지은 후로 너희 외갓집이 막 번창했지 않으냐. 다 그 황소 덕분이었재.
그 집서 그냥 눌러 살았어야 했는데 외삼촌이 글쎄 집을 팔고 읍내로 나가지 않었냐. 집 판다고 들썩거릴 때 외갓집 뒤란 대숲에서 구렁이가 기어 나와 혼비백산했었다. 그거이 다 징조였다.
집 구렁이는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인디 집 떠나지 말라고 말해주러 나왔던 갑더라. 근디 끝내 집을 떠나서는 니 외삼촌이 한때 정신까지 이상해지지 않았더냐.
◈ 내밀한 욕망 노트에 기록
유년시절을 보낸 마을은 아래로는 광주나 목포 여수 위로는 서울이 종착역인 철길이 놓여 있었다. 그 철길을 사이에 두고 이편 저편에 우리 집 논이 있었다. 나는 기차가 지나가면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멈추고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끔 기차 안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향해 손을 마주 흔들어주기도 했다. 무의식적인 행위였지만 나는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선망했던 것 같다. 내가 그 기차를 타고 그 마을을 떠나게 되기 전까지 그 철길은 나로 하여금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게 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추수가 한창인 논으로 가던 내 뒤를 따라오다가 기차에 치이기도 했고 술을 먹고 철길을 베고 잠이 든 사람의 머리통이 날아가기도 했으며 살아가는 것에 더 이상 의욕이 없던 일가족이 그 길에서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사람이나 짐승이 죽어나갈 적마다 기차는 500m쯤 지나서 멈췄다.
기차의 속도는 제어할 수 없이 빨라 기관사가 물체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발견을 했는데도 이미 늦었다는 것. 그것은 가장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중학생 때였다.
나는 그때 우정이라는 것을 오해했다. 나만의 비밀, 이를테면 나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너와 함께 나누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루같이 검은 눈동자를 지닌 여자애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그 여자애와 관계를 맺고 싶은 나의 간절한 욕구였다. 그때 나의 최고의 비밀은 키가 크고 이마가 반듯했던 사회선생님을 사모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아마도 진땀을 흘리거나 혹은 더듬거리며 그 여자애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로 인해 뺨이 발그레해져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학교에 가보니 그 여자애에게만 은밀히 토로한 나의 비밀을 다른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적기 시작했던 것이 점점 말을 줄이고 노트에 적는 일이 중요해졌다. 현실에서 부르는 이름 지명 장소들은 내가 다 새로 지어 넣었다. 암호처럼 나만 알아 볼 수 있는 희열이 있었다.
나의 내밀한 욕망들을 기록해 가는 사이에 노트 안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표현해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틈 속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멀리 있는 것, 여기가 아닌 저기가 서로 엮어지고 짜여지며 또 하나의 세계를 일구었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노트 안에서는 상상력이 작용되어 가능해지기 시작했고, 타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오해만 일으키는 감정들이 노트 안에서는 미화작용을 일으키며 풍성한 밭을 일구어 나갔으며, 형제 많은 속에서 자라는 동안 무수히 침범 당하는 나 개인의 일상이 노트 안에서는 무한대로 자유로웠다.
나는 그 자유 때문에 점점 노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나쳐 무엇이든 다 문장으로 바꿔보려는 게 습관이 되어갔다. 나중에는 문장을 쓰는 것 자체를 즐겨 시나 소설을 노트에 빼곡하게 옮겨 적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떠나온 도시에서 만난 은사는 내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나는 무단 결석이 길어져 제적 대상이었다. 도시는 마음을 붙일 만한 게 없었다. 어쩌다 마음을 붙이고 살아보려고 하면 어긋났다.
모두들 화가 난 사람처럼 각자들 다른 곳을 향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뭐라고 뭐라고 쓰다 보니 노트 반 권이 채워졌다. 무슨 문장을 썼는지 지금은 다 잊었다.
아마도 방문을 열면 넓은 마당이 펼쳐졌던 태생지에서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방문을 열면 한 사람이 드나들기도 좁은 부엌과 마주쳤던 비애와 갑자기 도시 빈민자가 되어버린 불합리한 삶을 뒤에 감추고 암호 같은 이야기들을 나열해 놓았을 것이다.
그 문장들은 쓴 나조차도 해독할 수 없는 말더듬이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사는 반성문을 읽어보고 내게 소설가가 되어보라 했다. 꿈이 필요했던 내게 그 말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같았다.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소설가가 되어 가는 중이다. 현실을 따라갈 수 없는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나는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 유동적인 이 삶을 표현하는 것에 의지해 견뎌왔다. 이따금 나는 내 소설이 내 삶이 저질러놓은 오류에 대한 반성문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 삶,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고 움직이는 이 삶 속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인간관계, 나도 모르는 사이 문을 닫아버렸던 문 바깥의 세계, 나로 인해 삶이 흔들렸을지도 모르는 타자에 대한 반성문일지도.
◈ 머물지 않는 삶의 상실… 소멸
작가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아버린 운명의 소유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낮 없이 형틀 같은 의자에 앉아 있기를 자청하겠는지. 내가 보아버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영원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작가생활이 끝날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는 긍극적으로 소외자의 편이다. 해결되지 않는 것에 시선을 두고 있으며, 묶여있는 것이라면 풀어놓고 보려는 자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속성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가장 큰 슬픔을 남기며 상실되어가는 꼴을 지켜보는 힘을 주었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한때의 진실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태어남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소멸을,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해체되어버리는 것이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견디어내고 지탱할 수 있었겠는지.
●연보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겨울우화’가 당선돼 등단
▦창작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 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
▦한국일보문학상(1993) 오늘의젊은예술가상(1993) 현대문학상(1995) 만해문학상(1996) 동인문학상(1997) 이상문학상(2001)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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