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특정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그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가치 판단이 이입되기 마련이다. 공격 지향의 활기찬 팀 컬러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고, 수비 지향의 안정된 팀 컬러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으며, 뛰어난 개인기를 높이 사는 사람도 있고, 팀을 위한 헌신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지난 4일 발표된 국내 코스타리카, 중국 평가전 대표팀명단 31명 중에는 두명의 '60년대 생'이 있다. 자그마치 십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황새' 황선홍, 그리고 그의 절친한 벗이자 동지이며 특유의 카리스마와 안정된 플레이로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아온 홍명보.
3월 27일 평가전에서 우리와 함께 월드컵 D조에 편성된 폴란드를 2-0으로 완파한 일본의 젊은 활기와 파이팅을 높게 평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대표팀의 '노화'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공격 선홍-수비 명보'라는 뿌리칠 수도, 안주할 수도 없는 거대한 산맥이 놓여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들과 동년배이다.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바라본다. 한때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고, 자신의 생애를 스스로 장악한 히어로가 되겠노라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들이다.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더 많이 뛰던 때도 있었다. 박수와 갈채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고질적인 부상의 악몽과 슬럼프, 그리고 한때 그들을 사랑하던 팬들의 냉소와 비난에 좌절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 햇빛에 그을려 검은 그들의 얼굴엔 시간에 쓸린 흔적이 남아 있다. 약간은 피곤해 보이지만, 자신에게 들씌운 승부의 숙명을 감지하는 겸양과 결단의 미소가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나는 그들을 동년배에 대한 애정만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온갖 폄하와 불명예스런 말들 속에서도 꿋꿋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자존심을 지켜온 황선홍, 그리고 유럽전지훈련 중 실시한 체력테스트에서 당당히 수비수 중 2위를 차지하며 변함없는 투지와 패기를 보여주는 홍명보는 우리 축구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영웅들임에 분명하다.
부디 부상 없이 활기찬 모습으로 '마지막 무대'가 될 지도 모르는 월드컵 본선에서, 결코 마지막일 수 없는 노장의 투혼을 마음껏 펼쳐 보여주길…. 그라운드 위에 새겨질 그들의 영원한 '젊음'을 간절히 기대한다.
소설가 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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