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출판계에 20년째 통용되는 신화가 있다.말을 다룬 책을 발간하면 기본부수 이상 꼭 팔린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쓰고 전문성, 실용성, 읽는 재미를 갖춰야 한다는 단서는 있다.
어휘력 늘이기 책, 어원 추적 책을 우리사회에서는 학생들만 사지만 영국에서는 어른들이 주로 산다.
우리출판계에서는 말 잘하기를 안내하는 책을 내놓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 분야 출판역사가 길다.
아마존(www.amazon.com)을 보면 이런 종류 책이 여전히 많이 나온다.
대체로 심리학전공자 어문학전공자 언어치료사 방송인이 저자이고 CNN사회자 래리 킹 책처럼 꾸준히 팔리는 책도 있다.
그래서 직업을 아예 ‘말하기 컨설턴트’라 바꾼 저자도 보인다.
영미 언론들은 말과 관련된 뉴스를 즐겨 기사로 다룬다.
지난해 뉴욕폭발사건을 대부분 언론은 미 정부발표대로 ‘9ㆍ11 테러’라 했으나 로이터통신은 ‘테러’사용을 거부했다.
“공포를 일으키는 폭력” 뜻의 ‘테러’에는 또 다른 자유를 위한 행동이라는 뜻이 드러나지 않아 가치편향적이라는 이유였다.
로이터의 견해, 뒤이은 찬반의견은 곧 기사화되었다. 언론은 말의 힘을 아는 때문이었다.
미 언론이 부시 미 대통령의 실언을 놓치지 않고 기사소재로 삼는 까닭은 말 관련 책이 잘 팔리는 것과 통한다.
실언기사 저변에는 말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자리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미 국민은 4,000시간은 봉사할 것을 원합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을 ‘4,000년’이라고 하고, 우리 중학생도 틀렸음을 알 만한 문장 “Is our children learning?”이라 말하는 실언은 웃음을 자아내고 난독증을 의심케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인식이 영미문화권에서는 강하다. 그래서 성인도 말 훈련을 한다.
대처도 영국수상이 되기 전후 다시 단어공부를 하고 말하기 속도, 강도, 높낮이를 단조로 하는 훈련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바른 말(political correctness)을 쓰자”가 널리 퍼진 그곳에서는 지식인이라면 미국인디언을 ‘American Indian’대신 ‘Native Americans’식으로 말해야 하고 따뜻한 내 말은 이웃과 사회를 치료한다고 강조된다(
http://wordscanheal.org).
노무현 후보의 말 조심, 말 훈련이 시작될 모양이다. ‘기업을 외국에 팔아 넘겼다’를 ‘외자를 유치했다’로 바꿔 말하기를 지지자들이 권했다는데 결국 말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 인식의 전환을 공부하는 일이 될 것이다.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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