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길에서 띄우는 편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04.17 00:00
0 0

비는 여행에 대한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빗속의 여행 추억이 진하게 남아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아마 그때에는 불편했을 것입니다. 젖어서 몸에 감기는 옷과 추위, 기다림…. 그래서 실패한 여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추억 속에서는 아름다운 색깔로만 칠해집니다. ‘그래도 좋았어’라고 되돌아봅니다. 여행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사실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더 즐겁습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일정을 짜고 준비물을 점검하고 길을 나서기까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온갖 아름답고 행복한 일만 상상합니다. 계속 웃음이 나오지요.

여행지에서 수시로 만나는 짜증나고 불편한 일들을 겪기 전이니까요. 비까지 만난다면 어떨까요. 분명 하늘을 원망할 겁니다.

비가 왔습니다. 땅바닥을 쪼아낼 듯이 쏟아붓는 비가 아니라 알맞게 대지를 적시는 비였습니다. 우산을 쓰고 거닐기도 적당했습니다.

‘봄비’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비가 오면 유난히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 한 잔 생각이 나 전화를 두드렸을 것입니다.

이번 비는 의미가 큰 비입니다. 오랜 가뭄에 하늘만 바라보던 농민들에게만 생명수가 아닙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을 위한 에너지입니다. 아니 생명 뿐 만이 아닙니다.

돌길인지 물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말라버린 개천들, 썰물 뒤의 갯벌처럼 드러난 저수지 바닥, 바람에 유실될 듯 먼지덩어리가 된 황톳길…. 모두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이번 비가 가져다 줄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찬란한 색깔입니다. 신록의 계절을 여는 비였습니다. 사실 그 동안의 가뭄으로 산천의 빛깔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새순이 돋기는 했지만 잎을 활짝 펴지 않아 생기가 없었고, 황사까지 내려 앉아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산천은 기운도 얻고 색깔도 얻을 것입니다.

도시의 회색빛이 길든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푸른 불처럼 타오르는 신록이 얼마나 황홀한지. 푸른 색 속에서 한참을 거닐면 눈까지 좋아집니다. 안경을 벗어도 잘 보입니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또 비가 오면 어떡하냐구요? 그래도 좋을 것입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