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거리. 이름만 놓고 보면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다. 음식을 담는 뚝배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뚜거리는 물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강원 양양의 남대천에 사는 민물고기이다. 뚜거리라는 말은 이 지역의 사투리이다.
물고기 사전을 뒤져 보면 표준말이 ‘둑중개’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생태에 대한 풀이는 조금 다르다. 사전에 둑중개는 맑은 하천의 상류에 사는 물고기란다.
수온이 섭씨 20도가 넘으면 못산다고 한다. 남대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강 하류에 많으며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름만큼 정체가 모호하다.
뚜거리는 어른의 새끼손가락만하다. 반이 머리이고 몸은 홀쭉하다. 작은 망둥어를 연상하면 된다. 주로 바위 틈에 산다. 물살이 빠른 곳일수록 많다.
먹성이 좋아 제 동료의 살까지 먹고, 모래를 들이켰다가 뱉기도 한다. 낚싯바늘에 아무거나 끼워 던지면 잡을 수 있다.
예전에는 정말 많았다고 한다. 먹을 물을 뜨려면 먼저 손으로 뚜거리를 쫓아내고 강물에 바가지를 담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때 남대천이 오염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 뚜거리탕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도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연어가 돌아올 정도로 남대천 물이 맑아졌지만 뚜거리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뚜거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한다. 작고 미끄럽기 때문에 숙련된 솜씨가 아니면 애를 먹는다.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강원도에서는 ‘막장’이라고 한다) 뚝배기에 넣고 끓인다. 손질한 뚜거리에 밀가루를 살짝 묻혀 끊는 국물에 넣는다.
요즘은 미관상의 이유로 뚜거리를 갈아 넣기도 한다. 파와 양념을 넣고 20분 가량 끓인다. 먹을 때에는 초피나무잎 가루를 뿌린다.
강원도 음식의 특징은 특징이 없다는 것. 자극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밍밍하고 순하고 맑다. 그런데 뚜거리탕은 그렇지 않다.
초피나무잎의 향기부터 자극적이다. 뚜거리의 점성이 녹아있는 국물은 걸쭉하다. 양념으로 들어간 매운 고추의 맛도 혀를 할퀸다.
구수하고 시원하다는 점에서 강원도 음식이지만 종합적으로는 농익은 남도의 음식을 닮았다.
뚜거리탕 앞에 자주 놓이는 반찬이 있다. 백김치다. 소금으로 절이기만 하고 다른 양념을 하지않은 채 발효시켰다.
뚜거리탕과 찰떡궁합이다. 김치는 은은한 배추향 외에 아무 맛도 없다. 뜨겁고 매운 국물에 놀란 입을 식힌다.
한 조각 씹으면, 그제서야 뚜거리탕은 편안한 강원도 음식으로 돌아온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