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 몇 명과 골프를 하다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었다. 신문사의 취재부서에서 일하는 친구의 말인데 이른바 ‘게이트 퀴즈’라는 것이다.예컨대 “다음 인물중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누구냐”는 식의 문제를 내고 4~5개의 보기 중 답을 고르게 한다.
주로 술자리에서 벌어지며 만일 답을 맞히지 못하면 폭탄주 한잔이 벌로 주어진다고 한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재미있는 사실은, 신문사 주변에서 심심풀이삼아 하는 게임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가을 ‘이용호 게이트’가 터지면서 소위 ‘게이트’의 행진은 시작됐다.
‘진승현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국정원 게이트’ ‘아태재단 게이트’를 거쳐 ‘최규선 게이트’에 이르렀고 이제 자칫 ‘아들 게이트’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기자라 해도 워낙 가지수가 많고 또 각 ‘게이트’마다 관련인물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좀처럼 정답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전적으로 ‘문’(門)이라는 뜻을 갖는 ‘게이트’(gate)가 권력형 비리 의혹, 부패스캔들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계기는 1972년 6월의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워터게이트 빌딩에 차려진 민주당 선거본부에 ‘강도’가 침입, 도청장치를 한 것이 발단이 되어 끝내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일이다.
이후 미국 언론에서도 최근의 ‘엔론게이트’(Enrongate)처럼 헤드라인에 종종 ‘게이트’라는 말을 써왔다.
■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리’(非理)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났을 때 ‘5공비리’, 노태우 대통령 때는 ‘6공비리’,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는 ‘문민비리’ 등이었다.
그런데 유독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에는 언론이 ‘비리’ 대신 ‘게이트’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정권의 총체적 부패’라는 뜻의 ‘○○비리’를 거론하지 않는 만큼 그나마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것일까?
다음 정권 때는 ‘게이트’의 숫자도 대폭 줄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신재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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