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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말하는 돌'과의 만남

입력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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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그거 어디에 쓰는 겁니까” 고인돌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때 해당지역 군수님이 보인 반응이다.“고인돌이라면 옛날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젯상 말입니까” 이렇게 말을 받은 군수도 있었다.

우리가 가진 세계 제일의 선사 유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수준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그 돌무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에는 서로 고인돌 축제를 주관하겠다고 다투어 골치가 아플 지경이라 한다.

식목일 연휴 계획을 강원도 쪽 산행으로 잡았다가 남도 역사문화 탐방으로 바꾸었을 때, 고인돌에 관한 내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그것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우리나라에 그것이 가장 많다는 사실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여행 첫날 전북 고창의 고인돌 군락을 둘러보는 순간 왜 그것을 ‘말하는 돌’이라 하는지 까닭을 알았다.

그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무관심과, 피상적인 상식을 내세워 다 아는 것인 양 여겨온 교만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지의 바다에서 역사의 보물을 건져올리는 일에 몸과 마음과 돈을 바친 사람들이 많음에 깊이 감사하였다.

특히 세계거석문화협회를 만들어 이 운동을 주도하면서 고인돌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유인학(柳寅鶴) 한국조폐공사 사장과, 김병모(金秉模)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의 열정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한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잉태된 것은 김 총장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허 권 문화부장과의 우연한 술자리였다.

1997년 5월 경주문화엑스포 준비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가까운 음식점에서 소주잔을 나누다 고인돌 얘기가 나왔다.

“밑져야 본전인데 말도 한번 못해 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즉석에서 문화유산 지정신청을 하기로 했다.

세계 고인돌의 50%에 달하는 수만 기가 우리나라에 군집해 있고, 종류와 형태가 다양한데다, 가장 큰 것도 있으니 신청해볼 만 하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다음은 거석문화협회를 결성해 유 사장을 총재에 앉히고, 유네스코의 지정을 밀어 부친 일이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목적이 이루어지자 고인돌은 급격히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그것은 까마득한 선사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유일한 역사자료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우리 역사는 고작 2,000년도 못되지만 이 돌무덤들은 기원 수백 년, 또는 1,000여년 전의 일을 정직하게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한에 2만 5,000기 북한에 1만 4,000여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전북 고창군에는 죽림리 상갑리 일대를 중심으로 2,000여기가 밀집돼 있다.

이 가운데는 상석(上石) 무게가 300톤이 넘는 것도 있다. 까만 옛날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해 무덤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자연석이 아니라니, 어떻게 그 큰 돌들을 두부 모처럼 잘라냈을까. 이런 상상에 이르면 그 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답이 나온다.

학자들은 청동기를 이용해 바위에 한 줄로 여러 개의 구멍을 파고 목질이 단단한 쐐기를 박아 물을 부어 바위를 가르는 전문 직업인들이 있었다고 본다.

돌 밑에 원목을 깔아 수천 명이 당기고 미는 방법으로 운반했으리라는 추정에서는 그 시대 공동체 사회의 규모가 드러난다.

고인돌에서 나오는 화살촉 방추차(紡錘車) 같은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선사시대 문명의 단면을 말해주는 사료(史料)로 이보다 귀중한 것이 있을까.

이 소중한 유물은 고창ㆍ 강화ㆍ 화순군 것들만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지금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크레인의 완력에 떠들려 사라져 가고 있다.

이번 여행은 그 돌무지들을 제발 그대로 두어, 돌들의 말을 기다려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깨우쳐주었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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