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난리였다.1학년 짜리 작은 아이는 자기와 친한 선생님이 나오니 내가 꼭 봐야 한단다.
4학년인 큰 아이도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그(담임 선생님)가 농구를 논대요”라며 꼭 오라고 했다.
오후 6시께 집사람이 전화로 함께 갈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온 가족의 성화로 간 농구시합은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인근 초등학교의 경기였다.
경기침체 여파로 학교예산이 삭감되자 기금마련을 위해 학교 선생님들이 농구시합을 마련한 것이다.
입장권 판매수입과 협찬 받은 먹거리를 판 수익금이 기금으로 적립된다.
경기장인 동네 고등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차 세울 곳이 없었다.
체육관 한쪽 스탠드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학교 색깔인 초록색 옷을 입고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선생님 선수가 소개되자 아이들의 함성으로 체육관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하얗고 까맣고 노란 온갖 인종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밴드 연주에 맞추어 흥겹게 “Go Go”를 외쳤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겁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생각난다. 즐겁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고 익힐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곳이다. 선생님은 같이 농구하고 놀아주는 사람이고 조지 워싱턴과 링컨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다.
또 버지니아 초기의 식민지 정착시대를 보기 위해 제임스타운이나 요크타운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이다.
아이들과 함께 식초와 소다를 넣은 음료수 병 꼭지에 풍선을 씌운 다음 병을 흔들면 풍선이 튀어나가는 실험을 하면서 같이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재키 찬(성룡)에 대한 작문 과제에 “우리 엄마도 어렸을 때 재키 찬을 좋아했는데 나도 좋아한다”고 답을 써도 면박을 주지 않는 선생님이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의 농구시합을 보면서 아이들의 입에서 열띤 함성이 나오며 일체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교육 내용도 천편일률에서 벗어 나 있다. ‘20달러를 갖고 1달러 짜리 사과와 2달러 짜리 오렌지를 몇 개 살 수 있을까?’는 과제가 나왔다.
수학과를 나온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상한 문제라고 한다.
‘정답은 하나’라는 생각으로는 이상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도 있으며, 그 방법들을 궁리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미국의 교육은 아이들을 틀 속에 가두지 않는다.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 소질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을 지향한다.
즐겁게 배우면 저절로 익혀질 것이건만 왜 하나 밖에 없는 정답만을 고르라는 시험에 한국의 부모들은 그다지도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 대학에 입학하여야만 교육이 성공한 것인가?
교장선생님이 던진 농구공이 식탁위로 구르자 모두 즐거워하는 것, 갖가지 정답을 놓고 서로 다른 정답을 토론하는 것, 참다운 배움의 길이다.
박해찬·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이번 주로 '테마기고-선진교육현장'을 끝냅니다.다음주부터 '테마기고-시민의식'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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