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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임매매 '고양이에 생선 맡긴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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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임매매 '고양이에 생선 맡긴꼴'

입력
200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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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임모(42)씨는 지난해 11월 한 대형 증권사의 지점장에게 전세 보증금으로 받은 8,500만원을 맡겼다가 최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은행 이자가 너무 낮아 고민하던 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지점장이 “한달에 100만원씩 벌어주겠다”고 장담하자 ‘은행보다는 낫겠지’라고 맡긴 것. 한달 뒤 임씨는 지점장으로부터 200만원을 벌었다는 연락을 받고 식사까지 대접했다. 지점장은 이 자리에서 200만원을 건네며 계좌를 하나 더 개설하라고 권했고 임씨는 이에 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끼였다는 것을 아는 데는 이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우편으로 날아온 계좌 잔고가 300여만원으로 줄어 있었던 것. 알고 보니 당시 임씨가 서명한 계좌는 선물ㆍ옵션 계좌였고 지점장은 개인적으로 선물ㆍ옵션 거래를 하다가 결국 임씨의 돈을 몽땅 날린 것이었다.

■유명무실한 일임매매 신고조항

최근 증시 활황세를 틈타 증권사 지점들의 불법 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서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불법 일임매매가 성행해 투자자들을 울리고 있다. 일임매매를 은행에 예금하는 정도로 쉽게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일임매매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며 절대 일임매매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증권사 직원 등에게 ‘알아서 불려 달라’며 돈을 맡기는 일임매매는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분쟁의 소지가 큰 만큼 반드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한 뒤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업협회에 신고토록 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고된 일임매매는 단 한건도 없다. 증권거래법상 고객이 미리 정해준 종목의 수량과 가격, 거래 시기에 대해서만 일임매매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일임매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 지금 같은 일임매매는 모두 불법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일임매매로 인해 손해를 볼 경우 고객도 일부 책임이 있기 때문에 피해액을 모두 보상받긴 힘든다.

■일임매매 작전세력 실탄으로

특히 일임매매를 통해 맡겨진 자금이 작전세력의 실탄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증시가 활황세를 타자 일부 증권사 지점이 고객들로부터 일임매매를 받은 돈으로 작전을 일삼고 일다”며 “작전을 통해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린 뒤 최종 물량을 고객들 계좌로 넘기기 때문에 결국 고객들은 깡통계좌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증권사 지점은 시세조정 등을 위해 지점 내에 불법 투자자문사(부티크)까지 운영하고 있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들을 서로 유치하기 위한 각 증권사 지점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자상담사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지점내에 불법 부티크를 만들어 고수익을 보장하는 등 각종 불법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더군다나 최근 한 증권사 지점에서는 수천만원대의 경품을 내걸고 고객유치 이벤트를 펼친 뒤 경품을 직원들끼리 나눠 가진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쟁조정신청건수 급증

실제로 최근 증권사 직원이 불법 행위로 적발되는 사례와 고객의 분쟁조정신청건수 등도 급증하고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협회 규정을 위반, 제재를 받은 증권사 직원은 모두 43명이다. 이중 12명은 증권전문인력 자격이 취소됐고 31명은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제재를 받은 증권전문인력 111명의 39%에 달하는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일임매매가 21명으로 가장 많고 시세조종(10명) 자기매매(3명) 임의매매(2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월 평균 분쟁신청 건수는 10여건이었으나 올해 들어서는 월 평균 20건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브릿지증권 김경신 상무는 “일임매매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일임매매 신고가 단 한건도 없다는 것은 법 규정이 이미 사문화한 것인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1,800곳이 넘는 전국의 증권사 지점을 감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증권사 지점의 불법 행위를 중점 조사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랩어카운트 상품의 활성화를 통해 일임매매 수요를 흡수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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