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영화계는 ‘월드컵’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볼만한 그야말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가 그것도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 한국에서 벌어진다는 점 때문이다.실제 경기장에서 동원될 약 170여만 명의 관중과, 시시각각 경기 중계를 내보낼 TV 수상기 앞으로 수천만 명의 눈이 쏠릴 것이 불 보듯 뻔하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영화가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것이 뻔하고, 극장가는 보기 드문 비수기의 한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이유로, 4~5월에 주 단위로 한국영화가 몰아서 개봉되거나, 6월 말 이후로 멀찌감치 개봉 일정을 미루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약 2억 인구가 직접 발로 뛰며 즐기고 있는 스포츠이자, 400억 명의 눈을 붙잡아 놓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스포츠인 축구가 한국 영화계 종사자들에겐 더할 수 없이 부담스러운 ‘존재’인 셈이다.
월드컵이 일구어내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짜릿한 드라마가 가지고 올 엄청난 파장에 영화계는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영화계는 가장 거대한 ‘경쟁작’을 만난 셈이다.
두번째, 올 한해 영화계에도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유독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삶을 담은 ‘챔피언’, 전설적인 레슬러 역도산의 일생을 그리게 될 ‘역도산’,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야기를 소재로 한 ‘YMCA야구단’ 등. 그 외에도 몇몇 작품들이 기획 중이다.
이들 영화들은 영화적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스포츠인들의 삶을, 그 역사를 구현해낼 예정이다. 그것이, 영화적 재미를 넘어서 진정한 의미와 감동을 전해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과거 영화계엔 스포츠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속설이 퍼져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스포츠 경기가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뛰어넘는, 스포츠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영화계엔 많은 금기 조항들이 사라지고, 무시되고 있다. 한국 영화의 성장이 가져다 준 자신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련의 영화들의 제작 시도가 한국영화계가 다루는 소재의 영역을 한 뼘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월드컵이 치뤄지는 올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살아있는 스포츠 정신이 전해주는 ‘감동’, 제대로 된 영화가 전해주는 ‘감동’은 다르지만 또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1996년 5월, 21세기의 첫번째 월드컵을 사상 최초로 한국과 일본이라는 아시아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역사적 발표가 있었다.
그 뜻 깊은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그 어느 해보다 멋진 ‘월드컵’,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들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명필름 대표 심재명
소년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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