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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도굴로 폐허된 다호리 뜻밖 역사적 보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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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도굴로 폐허된 다호리 뜻밖 역사적 보물 쏟아져

입력
200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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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절반 이상을 국립박물관에서 보냈다.지난 30년간 박물관의 신축과 개관이 어지럽게 이어지고 그 와중에 이뤄진 특별전시와 발굴조사 등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이가운데 특히 잊지 못할 일은 역시 경남 창원의 다호리(茶戶里)유적 발굴조사가 아닌가 싶다.

고고학에 입문한 이래 숱한 발굴조사에 참여했고 발굴운도 비교적 좋았지만 다호리 유적 1호묘의 목관(기원전 1세기)을 들어 올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한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1989년 겨울의 다호리 발굴 현장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전장을 방불케 했다.

산자락에서부터 편편한 논바닥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움푹 파인 도굴갱들이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발굴단은 성과를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1호묘 도굴갱 조사에 들어가자 뚜껑이 파괴된 목관이 모습을 들어냈다. 이 목관은 그간의 추정과는 달리 통나무를 통째로 잘라 만든 것이라 모두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체인블록을 이용해 묘광에서 목관을 들어낸 후였다.

묘광 바닥에는 각종 칠기와 하관 때에 사용한 끈, 그리고 제의를 지낼 때 사용한 밤과 그릇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 한 가운데에 대나무로 짠 상자가 작은 구덩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보물(?)상자에는 우리 역사를 새로 쓰게 할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00년 전에 문자가 사용되었을 것을 암시하는 붓과 삭도(나무판에 쓰여진 글씨를 지우는데 사용했던 지우개 역할의 쇠칼), 중국 한(漢)과의 교역에 사용됐던 수출용 쇠도끼, 거울·동전·허리띠 장식 등의 수입품, 그리고 수장의 권위를 보여주는데 사용한 깃털부채와 화려한 칼집, 창·칼과 같은 무기 등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로 밝혀진 묘의 구조와 목관의 형태, 목관 주위에서 나온 각종 칠기들, 피장자가 내세에 가져가고자 했던 상자 등 모두 국내 발굴사상 최초로 기록될 만한 것들로 삼한 초기를 구명하는데 없어서 안될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앞으로 발굴을 계속한다고 해도 다시는 이런 유적을 찾아낼 행운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조금씩 발굴 성과를 글로 발표하여 왔지만 아직도 연구할 내용과 쓸 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

이 발굴에 참가하였던 행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건무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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