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타임스는 지난달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특집 머리기사로 다루었다.자식 영어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발음을 잘 하게 한다고 아이의 멀쩡한 혀까지 수술 시키며 이른바 원어민 교사에 의한 강습이나 해외 연수에 막대한 돈을 퍼붓고 있다는 내용이다.
혀만 굴리면 말이 되는 줄 알고 어린 자식에게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이상한 부모가 많지야 않겠지만, 대학에까지 특정 수의 외국인 교수 채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우리가 걸려 있는 ‘영어병(病)’이 중증은 중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는 높은 교육 수준에 비추어 영어 구사력이 유난히 떨어지지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음을 생각하면 영어 조기교육을 정책으로 채택한 것은 잘 한 일이고 부모들의 유별난 열성도 높이 살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데 있다. 외국어 교육에서 정확한 발음의 기초를 닦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 점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많은 고충을 겪는다.
그러나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혀가 짧기 때문이 아니라 함은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2세를 보면 곧 알 수 있다.
또 중학교 입학 전에 영어를 한마디도 들어 본 적이 없던 구세대 인물 가운데 영어를 자기 말처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늦게 시작한다고 외국어 배우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중고등학교 6년간 영어 공부를 하고도 입도 벙긋 못하고 외국어에 대한 공포심만 길러준 재래식 교수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원어민에 의한 회화 교육과 해외 연수에 대한 맹신 또한 그에 못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사람 모두가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 연수의 경우도 학교의 정규 과정이나 생활 현장에 직접 참여해 언어와 함께 생활 전반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체득하는 경우라면 효과가 크지만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끼리 몰려 다니는 연수라면 국내에서 집중적인 어학 교육을 받는 것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동구 등 전 사회주의 국민으로서 외국 여행은 고사하고 외국인을 접할 기회조차 거의 없었던 사람이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교육의 관건은 교사 교육이며 영어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희망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어가 유창하기는 고사하고 발음의 기초를 제대로 잡을 기회조차 충분하지 못했던 교사에게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라니, 그런 무리하고 반 교육적인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교사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외국의 좋은 시청각 교재를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주는 일이 발음 나쁜 교사가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도록 방치하거나 외국인 교사를 수입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훨씬 효율적인 투자일 것이다.
공산권이 무너지자 동구의 여러 나라는 러시아어 교사를 6개월간의 집중훈련 끝에 영어교사로 전환시켰다.
한국어를 배우는 서양인은 1년 정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웬만한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싸게 돈을 들여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인 교사를 수입해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문법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원어에 핀란드어 자막을 넣은 외국영화 등을 텔레비젼에 방영함으로서 현장교육의 효과를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어 교육에서 명심해야 할 일은 단순한 혀 놀림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대체로 한가지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면 다른 말을 잘 할 가능성도 그 만큼 높다.
영어 공부를 위해 어린이에게 자연스런 자기표현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우리말 교육을 등한시 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없을 것이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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