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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保革구도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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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保革구도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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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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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최근 현 정부를 좌파적 정권으로 규정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유럽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보수연합이 집권한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의 각 정당을 진보적인 차례로 열거하면, 민주사회당 녹색당 사회민주당 기독교사회당 기독교민주당 자유민주당의 순이다.

1998년 선거의 각 정당 득표율은 민사당 5.1%, 녹색당 6.7%, 사민당 40.9%, 기사당 6.7%, 기민당 28.4%, 자민당 6.2%이다.

현 정부는 이 중 어느 당에 가장 가까울까?

필자에게는 사회정책에서 어느 정도 진보적이고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하는 기독교민주당 혹은 기독교사회당이 가장 가까워 보인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보장 예산이 아직 10% 남짓이고 국가기간 산업인 발전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현 정부에 그 이상의 진보적 성격을 부여해 주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은 어느 당에 가까울까. 현 정부를 급진적이니 좌파정권이니 하며 공격하는 것을 보면 자민당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오른쪽인 것 같다.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40%, 중도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기사당과 기민당)이 35%를 차지하고 서로 정책대결을 벌이는 나라와 중도우파와 극우파가 색깔논쟁을 벌이는 나라는 정책의 치밀함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정책이 조야한 것은 서로 다른 견해를 놓고 진정한 토론을 벌일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신문의 슬로건처럼 된 ‘보혁(保革)구도’라는 말도 설득력이 없다. 보수와 진보라는 구별이 일반적이며 보수와 혁신이라는 구별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정책대결이라는 쉽고도 분명한 단어가 있음에도 ‘보혁구도’라는 낡은 개념을 끄집어내는 것은 ‘색깔론’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임을 짐작케 한다.

혹 북한에 대한 입장이나 북한과의 관련성을 들어 보혁구도 혹은 색깔론을 적용하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역동적인 현대사로 인해 이미 우리는 친형이 공산주의자였고 자신 또한 남로당원으로 징역살이를 한 박정희씨를 극우 대통령으로 모신 바 있고,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씨를 중도우파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씨의 장인이 부역죄로 징역살이를 했고,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이회창씨 역시 부친이 일제하에서 검사 서기를 하다가 해방 후에는 반공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색깔론이 부적절하다는 역사적인 증거들이다.

또 남북관계는 이미 세계정세의 불안정함 속에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관계로 변했고, 무엇보다도 그 동안 색깔론이 악용된 나머지 국민이 신물이 날 정도로 지긋지긋해 한다는 점에서도 색깔론은 그 존재근거를 잃어버렸다.

일부에서는 영국에서의 ‘제3의 길’이나 독일의 신중도주의를 근거로 아예 보수 대 진보의 정책대결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 대 진보의 정책대결은 때로 그 차이가 미미해 보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외정책에서 똑같이 보수라고 할 수 있지만 보수적인 대외정책 기조 내에서 나타난 ‘정도의 차이’가 우리에게는 평화무드냐 전쟁무드냐 하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유럽의 ‘제3의 길’ 모색은 오랜 기간 좌우 정책대결로 좌파와 우파의 정책이 상호 접근하게 된데 기인한다.

아직 정책대결이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색깔론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정책대결을 방해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보혁구도와 관련된 논쟁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뒤집어 씌우기식 색깔론은 지양하고 보수 대 진보의 정책대결은 지향한다.’

박주현·사회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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