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군 한탄강변 현무암 지대에 넓게 펼쳐진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석기들이 발견돼 한반도 유적들 가운데 해외 고고학 서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유적은 1978년 4월 고고학을 전공한 주한미군 병사가 한탄강에 소풍을 갔다가 구석기로 보이는 돌멩이를 발견, 김원룡(金元龍) 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하면서 주목 받게 됐다.
이듬해 본격적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됐는데 당시 서울대박물관 학예사로 있던 필자가 현장 책임자를 맡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을 것 같은 생 땅에서 주먹도끼 주먹자르개 등 수만, 수십만 년 전 사람이 만든 석기가 툭 툭 튀어나온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 주먹도끼 발견은 당시 대단한 문화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계원 비서실장을 현장에 보내 격려하고 발굴단이 상주할 임시사무실도 지어줬다.
발굴 광경은 영화관 대한뉴스로도 상영됐는데, 스크린을 통해 발굴 작업을 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생경하면서도 가슴뛰는 경험이었다.
전곡리 유적은 필자 개인의 삶에도 큰 선물을 안겨줬다.
필자는 원래 전공이던 삼국시대 말타기 도구를 버리고 돌과 씨름하는 구석기 학자로 학문의 행로를 바꿨다.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도 그곳에서 만났다.
79년 숙명여대 학보사 사진기자로 현장 취재를 왔던 아내와의 만남을 두고 주변에서는 “발굴은 하지 않고 연애만 했다”고 놀려댔다.
우리 내외와 전곡의 인연은 험하기도 하여서 86년 아내와 함께 현장에 거주하며 발굴을 하는 동안대전차 지뢰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전곡 유적 연구는 한국 구석기 연구 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서 유사한 석기 공작들이 잇따라 발견됐고 석기 문화와 유적 형성과정에 관한 본격적인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아쉽게도 전곡 유적의 연대는 4,5만 년 전에서 30만 년 이전까지 학설이 아직도 분분하다.
그러나 이런 논쟁을 통해 우리의 구석기 연구는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필자는 주위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얻어 93년 전곡리의 임시사무실을 개조, 유적관을 개관했다.
또 매년 어린이 날에 석기 만들기 등 선사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전곡리 축제’를 열고 있다.
10회째인 올해 행사에도 많은 가족들이 참가해 전곡 유적이 학자들만 관심 갖는 죽은 유적이 아니라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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