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나 푼수끼 있는 역할만 하는데 좋기야 하겠어요.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괴물 역이라도 할래요.”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시청자 김량경(25)씨. 방송사 공채시험에서 몇 차례 떨어지고 포기한 꿈을 요즘 다시 키우고 있다.
MBC TV 재연프로그램 ‘타임머신’(일요일 밤 10시 35분)의 시청자배우로 방송 출연의 꿈을 이루었다.
연기 아마추어인 시청자가 방송의 주인공이 됐다.
‘타임머신’ 의 인기 원동력은 바로 시청자 배우. 토픽감의 황당한 사건사고를 재연하는 촌스러운 구성과 시청자 배우의 어색한 연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하는 바람을 만족시켜주듯 시청자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타임 머신’에서 시청자 배우가 차지하는 몫은 기대 이상이다. 출연료 5만~10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타임머신’은 매주 2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10위 안에 드는 인기프로그램. 제작진이 분석하는 인기비결은 바로 시청자 배우의 능청스런 연기다.
목욕탕에서 싸움하는 여인네들, 남산공원에서 키스하다 풍기문란으로 적발되는 연인들, 바람피는 남편 등 역할도 무궁무진하다.
2001년 11월 11일 첫 방송 ‘오리들의 반란’에서 오리농장 주인으로 출연한 진정필(40ㆍ전남도민일보사 기자)씨를 비롯, 지금까지 19회 동안 모두 26명이 출연했다.
출연을 신청한 시청자는 870여명에 이른다.
‘영자의 전성시대’(1월20일 방송)에 윤락여성으로 나온 것을 비롯 지금까지 4회 출연한 김량경씨가 최다출연자.
보다 많은 시청자 배우가 출연할 수 있도록 1회 출연을 원칙으로 세운 제작진으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다.
김씨는 처음 출연했을 때 이마로 박을 깨다가 피를 흘리면서도 “나중에 한 번만 더 써달라”고 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엑스트라 배우를 기용해온 또다른 재연프로그램 ‘우리시대’(MBC)에서도 출연섭외가 들어올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화이트데이에 생긴 일’(3월17일 방송)에 여주인공 오봄비로 출연한 김지은(16)양은 평범한 중학생.
잡지모델 경력이 있고 엽기적인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는 청순한 외모로 시청자나 연예매니지먼트사의 관심을 받았다.
출연 희망자는 대개 연기자가 되고 싶은 시청자들. 10~20대가 약 70%를 차지한다. 성별, 연령별로 분류해두었다가 이미지가 맞는 사람을 골라낸다.
이종현 책임프로듀서는 “학교 다닐 때 연극을 해보았다거나 연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출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한다.
시청자 배우는 연기력을 미리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촬영 때 대본이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
1회 출연한 진정필씨는 ‘마당쇠나 잡놈 역할까지도 잘할 수 있다’는 독특한 자기소개로 시선을 끌었으나 연기가 미흡해서 대사는 중국어 몇 마디로 처리했다.
‘남산공원 키스 사건’에 출연한 김현민(25ㆍ회사원) 현지연(20ㆍ학생)씨는 모르는 사이지만 키스신을 무리없이 해냈다.
시청자배우를 기용하는 속셈은? 이종현 CP는 “다루는 소재들이 워낙 오래된 사건이다보니 후속 취재가 어려워서 사실적인 재연극을 만들기는 어렵다.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프로그램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시청자가 방송에 참여하는 기회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알릴 겸, 방송 전부터 시청자 배우를 기획했다”는 의도가 과녁을 맞춘 셈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