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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이언팜' - 애인찾아 삼만리 현대판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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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이언팜' - 애인찾아 삼만리 현대판 돈키호테

입력
2002.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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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팜(Iron Palm)? 무슨 뜻이야.아, 옛날 소림사 스님들이 나오는 홍콩 무술영화에서 가끔 보았던 뜨거운 모래에 손을 넣어 단련시킨다는 그 철사장(鐵沙掌).

그럼 무협액션영화겠네. 아니, 5년 전 헤어진 애인 지니(김윤진)를 찾아 미국 LA로 온 백수건달의 이야기라고. 그런데 제목이 왜 그래.

그 청년이 ‘철사장’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래서 LA에 올 때도 다른 것은 몰라도 전기밥통만은 갖고 왔고 최경달이란 이름도 아이언 팜으로 바꿨다나.

아니 철사장하고 밥통하고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게 바로 훈련 도구라고? 모래 대신 밥통 속 뜨거운 밥에 손을 찔러 넣는다고? 미친 놈 아니야.

요즘 세상에 철사장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더구나 모래 대신 먹는 밥에다?

그리고 섹스 할 때 여자가 좋아했다고 천생연분이라고 믿고 여자 하나 찾으러 5년 동안 영어 회화 배워 미국에 오다니.

정신 나간 돈키호테도 아니고.

돈키호테가 맞다고? 풍차 대신 여자가 소주 없이는 못산다고, 여자가 자기가 생각나면 불라고 했다고 LA 한인타운의 술집을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서는 호루라기를 불어대니.

무슨 경찰이 출동한 줄 알고 혼비백산하던 손님들에게 얻어터지고 쫓겨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정신. 그야말로 사랑의 돈키호테지. 뭐, 그럼 산쵸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당연하지.

고물자동차로 불법 택시영업을 하는 동석(박광정)이란 친구가 있지. 그야말로 콩글리시의 1인자야. “Today English Become.(오늘 영어 되네)”

그런데 아이언 팜은 누가 맡았지. 그럴듯한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데. 차인표라고? 음, 그럴듯해.

미국서 5년이나 살았으니 영어도 잘 할거고, 사실 핸섬한 이미지보다 과장스럽고 엉뚱한 캐릭터가 더 어울릴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차인표를 겨냥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어.

감독이 육상효(39)라고.

일간스포츠 기자생활을 하다, 어느날 영화 하겠다고 뛰쳐나가 ‘장미빛 인생’(1993년)과 ‘축제’(1996년)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 ‘슬픈 열대’ (1994년)와 ‘터틀넥 스웨터’(1998년)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던 그 친구.

4년째 LA에서 시나리오 공부(USC 대학원)를 하고 있다며. 그럼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겠네.

‘아이언 팜’은 코믹하다. 영화에서 모처럼 제 역할을 찾은 듯한 차인표의 연기로 더욱 우스꽝스런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렇고, 주변인물 역시 색깔이 뚜렷하다.

아이언 팜과 연적관계인 애드머럴(찰리 천)은 교포 2세로 미국사회에 완전히 편입한 존재라면, 동석은 영원한 아웃사이더이고, 소주 칵테일바를 열고 싶은 지니는 그 중간쯤에 있다.

각자의 삶과 가치관이 다르고, 영어실력이 다른 그들이 언어소통문제와 문화적 차이로 충돌하면서 영화는 끝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 웃음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고통이다. 고통을 코믹하게 견디는 방식이다.

아이언 팜은 이소룡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뜨거운 밥 속에 손을 집어넣는 고통스런 철사장으로 사랑을 잃은 고통을 다스리고, 애드머럴은 청바지를 찢는 것으로 삼각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다스린다.

아이언 팜이 못 마시는 소주를 토해가면서 배우고, 그토록 고집하던 영어를 갑자기 포기하고 세 번이나 한국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니는 술을 먹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

그래서 ‘아이언 팜’의 웃음 뒤에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을 발견하는 순간 영화는 따뜻한 사랑과 연민의 우화가 된다.

그 우화 속에는 이 시대에 아직도 사랑 하나 믿고 이역만리 찾아온 한 청년의 순수함도 있고, 그것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여자의 아름다운 마음도 있으며, 또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도 있다.19일 개봉.15세 이상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육상효 감독

_어떻게 이런 소재를 생각하게 됐나.

“이웃에 사는 유학생에게 아직도 한 친구가 철사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 내가 LA에 살면서 느낀 것들을 결합했다. 2년 전 USC의 시나리오과 첫 프로젝트로 쓴 것인데 학과 동료들이 ‘재미있다’며 격려해줘 영화로 만들게 됐다. 늘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시나리오로 쓰려 한다. 브라질에서 살았다면 그곳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_기존 미국 속의 한국인을 다룬 영화와 다른데.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한국의 정체성을 우겨넣다 보니 심각해지고, 잘 안 맞는 경우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보다는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사회속의 한국인의 삶은 영화의 배경인 코리아타운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영어 차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다.”

_코미디를 좋아하나

“심각한 것을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부담스럽다. 슬픔도 얼마든지 코미디가 될 수 있다. 슬픔이 있어야만 코미디가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아이언 팜’은 사실 고통에 관한 영화다. 소주가 그렇고, 애드머럴이 청바지를 찢거나, 아이언 팜이 아이들에게 철사장을 가르치면서 ‘고통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 모두 그런 표현들이다. 다만 그것을 코믹한 방식으로 표현 했을 뿐이다. 웃음과 슬픔의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했다. “

_미국 스태프와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자기 일만 책임진다. 예외가 없다. 때문에 감독이 미리 철저히 준비해 주어진 시간에 찍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제작비(약 20억원)의 한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와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다시 찍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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