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이후 처음으로 9일 밤 입원했다.김 대통령은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을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단축하고 이날 8시40분쯤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했다.
허갑범(許甲範) 주치의와 장석일(張錫日) 의무실장은 만찬에서 김 대통령이 식사를 잘 하지 못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자 행사 후 긴급히 진찰을 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왼쪽 대퇴부 근육염좌가 생긴 데다 최근 3일 동안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료진은 긴장했다.
허 주치의 등은 “병원에서 쉬면서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평소 김 대통령은 “하루 푹 자면 괜찮다”며 이런 건의를 거절하곤 했지만, 이날 만큼은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순순히 병원으로 향했다.
김 대통령이 입원하자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은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정작 김 대통령은 오랜만에 푹 잠을 잤다.
‘방문객 사절’이라는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이희호(李姬鎬) 여사가 보조 침대를 갖다 놓고 병 간호를 했을 뿐 청와대 관계자들은 출입을 삼갔다.
전윤철(田允喆) 비서실장도 10일 아침에야 병문안을 했고 이 때도 김 대통령은 자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아침 죽을 약간 들었고 링거액 주사를 맞은 뒤 검진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주로 휴식을 취했으나, “아무 것도 보지 말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았다.
청와대는 “대퇴부 염좌가 완전하게 낫지 않고, 소염제 복용으로 위장장애가 생겼으며 누적된 피로가 겹쳤으나 큰 문제는 없다”고 발표했다.
박선숙(朴仙淑) 대변인은 “2~3일 지나면 업무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소염제만으로 위장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김 대통령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고, 검찰 수사에서 아들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이 건강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2월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심초사한 것도 건강에 부담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전 비서실장은 일단 이번 주에 예정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앞으로도 일정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전 실장은 “대통령 일정이 과거 정부에 비해 몇 배나 많다”면서 “공식 일정만 따라다니는 내가 입술이 터진 상태”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증세가 크게 문제되는 상태는 아니어서 비상조치는 없었다.
헌법 71조에 대통령 유고 시 국무총리, 재경ㆍ교육부총리, 통일, 외교통상, 법무 순으로 직무를 대행하도록 돼있으나 이 체제를 가동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 베트남을 방문 중인 이한동(李漢東) 총리는 이날 오전 전 실장에 긴급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는 후문이다.
각종 서류는 의전비서관이 모아서 결재를 받지만, 화급한 현안이 없어 퇴원 이후로 미뤄놓았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주치의·의무실장 일문일답
허갑범 주치의와 장석일 의무실장은 10일 “김대중 대통령의 입원은 누적된 과로 때문”이라며 “2~3일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무실장은 그러나 “퇴원한 이후에도 다른 이상이 있는 지를 종합적으로 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허 주치의, 장 실장과의 문답.
_현재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간밤에 잘 주무셨고, 바이탈 사인(체온, 호흡, 맥박, 혈압)도 양호하다.”
_입원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누적된 과로 때문이다. 어제 핀란드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전부터 거듭 ‘쉬셔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대통령은 ‘준비된 일정을 다 마치고 보자’고 말했다. 만찬 후 의료진이 간곡히 건의, 병원으로 간 것이다.”
_위장장애의 직접 원인은.
“대퇴부 염좌의 치료를 위해 복용한 소염제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_소염제 때문에 식사를 못할 수 있는가. 다른 신경 쓸 일이 많았던 것 아닌가.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_정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과로로 피로감이 누적된 일시적 증상이다. 일부에서는 악성 루머가 나도는 모양인데 큰 문제는 없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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