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유럽전훈 중 가진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5분여를 남기고 두 골을 터뜨려 골 가뭄에 허덕이던 우리나라 대표팀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준 황선홍 선수. 그를 보면 고독한 사냥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다리가 길어 얻었다는 황새라는 별명에서도, 주먹 쥔 손을 슬쩍 내밀었다 당기는 독특한 그의 골 세레머니에서도 왠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런 그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88년 12월 아시안컵에서 1골 1어시스트로 일본을 침몰시키며 혜성같이 나타나, 다음해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전체 득점 1위에 오른 그의 눈부신 활약에 감격하고 감동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89년과 93년,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일본과 중국, 그리고 중동 축구강호들의 끈질긴 도전을 뿌리치고 우리나라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황선홍 선수를 꼽는다.
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서독, 스페인, 볼리비아와 함께 C조에 편성된 한국은 강호 스페인과 2:2로 비긴 후, 약체 볼리비아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월드컵 첫 승뿐만 아니라, 독일과의 경기결과에 따라 16강 진출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오하이오주립대학의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던 필자는 어렵게 표를 구해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보스톤 근교에 있는 폭스보로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무려 16시간의 운전 끝에 스타디움에 도착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외국을 방문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프로축구 경기장을 찾곤 했지만, 월드컵은 처음인데다 우리나라 경기였기 때문에 평상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황선홍을 비롯하여, 김주성, 서정원, 홍명보 등 우리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소름이 돋으며 목덜미가 뻣뻣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였지만 결과는 안타까운 0:0 무승부. 경기장을 빠져 나오던 중 볼리비아 사람의 차와 접촉사고가 나서 옥신각신 다투기까지 했으니…. 돌아오는 16시간은 갈 때보다 훨씬 더 힘들고 지루했다.
결국 독일전에서도 잘 싸웠으나 2:3으로 아깝게 패한 한국은 또다시 1승도 건지지 못한 채 예선 탈락했다.
그 후 황선홍 선수는 부상과 재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누가 뭐래도 황선홍 선수를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한다.
A매치 49골, 게임당 0.5골이 넘는 그의 기록을 누가 감히 넘볼 수 있을까? 그가 J-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재기에 성공, 우리에게 돌아왔다. 오는 6월, 그가 우리를 다시 한번 열광케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황선홍 선수, 파이팅!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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