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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해화 詩 ‘아내의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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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해화 詩 ‘아내의 봄비'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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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 지부에서 내는 ‘사람의 깊이’ 제5집을 읽다가 김해화씨의 ‘아내의 봄비’라는 시를 만났다.그 둘째 연은 이렇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비오는 봄날, 화자는 장보러 가는 아내를 따라 우산을 받쳐들고 순천 시장엘 간다. 때는 파장 무렵이다. 서둘러 장을 본 아내는 장짐을 남편에게 들리고 뒤따라 걷는다.

앞서 걷던 남편이 뒤돌아보니 아내가 멀리서 자기를 손짓해 부른다.

아내는 길바닥에 야채를 벌여놓은 할머니와 함께 있다. 할머니는 우산도 없이 비닐 조각을 뒤집어 쓰고 있다.

할머니는 아내에게 냉이와 감자 한 바구니를 이천원에 떨이해 가라고 한다. 아내에게 냉이와 감자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는 빗속에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냉이와 감자를 사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내 생각에 냉이ㆍ감자 한 바구니 통틀어 이천원은 너무 싸다.

아내는 짐짓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럽다며, 봄비 값 천원을 쳐서 할머니 손에 삼천원을 쥐어준다.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일 이 두 행을 뭉클한 유쾌함으로 되풀이 해 읽었다.

부부는 냉이와 감자를 마저 들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되돌아보니 할머니는 꾸부정한 허리로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의 눈길은 고마움의 눈길일 것이다. 화자는 그 순간 생각한다. “꽃 피겠습니다.” 그 꽃은 빗방울 맺힌 냉이 만큼이나 싱싱한 꽃일 것이다.

‘아내의 봄비’에서 화자의 아내가 실천하는 것, 그리고 화자가 흐뭇하게 공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소박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것을 연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보다 힘든 이웃에 대한 연민 말이다.

만약에 인간사회가 진보해 왔다면, 그 진보의 과정이란 그런 연민의 확산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운 연민의 마음은 이 노동자 시인이 다른 시들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강인하고 헌걸찬 분노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가 내릴 듯하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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