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56)씨는 새롭게 펴낸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깊은강 발행)의 첫 장에 이런 헌사를 적었다.‘나와 같이 사는 여자친구 정원에게 그리고 나의 세 아이 병수 아름 병일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
이 산문집은 그가 살 맞대고 사는 가족에게 바치는 책이다. 수년 전 아내와 세 아이를 소집해 “발전적인 해체를 하자”고 선언했던 박씨다.
가족도 짐이 될 수 있다. 지치고 상처받은 짐꾼이 되지 않으려면 서로 독립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져 봐야 한다.
그의 제안은 그러나 아들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 품에서 떠나기 싫은 모양“이라고 타박을 하면서도, 아이들 얘기를 할 때 박씨의 표정은 어쩔 수 없이 흐뭇하다. 함께 살아온 가족의 마음이란 그러하다.
그 다사로운 마음을 갖고 박씨는 ‘젊은 날을 살고 있는 딸에게’ 또 ‘세상의 주인이 될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쑥스러운 심정에 ‘아내’라고 곧이곧대로 부르지 못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녀에게’로 제목을 단 편지도 있다.
글쓰기는 박씨가 향기로운 친구처럼 가족과 지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작가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분자분 전한다. 사랑한다고, 강해지라고, 이해하고 용서하자고.
1970, 80년대에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소설을 출간하면 거뜬히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런 박씨가 1993년 절필 선언을 한 뒤 3년 만에 문단에 복귀해 펴낸 책은 판매부수가 뚝 떨어졌다.
“독자는 작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자각이 하나다.
또 하나, “베스트셀러란 ‘거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의미의 문학 독자는 2만 명 정도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중한 사실을 알게 돼 박씨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산문집 마지막 장 ‘작가이고 아버지인 그에게’에서 자신의 문학 인생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 그를 아끼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박씨는 4월부터 KBS 제1라디오 ‘박범신의 이야기 세상’ 진행을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 체험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창작의 힘이 되고 동기가 된다고 했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몸을 이리저리 부리면서, 열심히 단편과 중편을 쓰고 문예지에 연재를 한다.
언제까지나 현역으로 뛰는 ‘청년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은 그렇게 이뤄지고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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