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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선거보도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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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선거보도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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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제는 과거 정당 내 파벌 보스간의 타협으로 은밀하게 후보자가 선정되던 폐단을 없앤 획기적인 시도이다.민주당에 이어 곧 경선에 들어갈 한나라당은 대통령 후보자뿐 만아니라 국회의원 후보자도 각 지역에서 당원들의 투표로 결정키로 했다.

이처럼 정당 내에서도 선거민주주의가 제도화된다면 지금까지 국민에게 쌓였던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크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민주주의가 정착되려면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언론의 선거보도 관행이다. 선거에서 언론은 유권자와 후보자를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직접 후보자를 만나 보고 결정을 하는 유권자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보자들도 모든 유권자들을 일일이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정책을 설명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유권자나 후보자 모두 언론에 의지해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민주적이라 하더라도 언론이 민주적으로 선거를 보도하지 못하면, 선거는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선거의 본질보다는 피상적이고 지엽적인 측면에 몰두해 왔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이나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도외시한 채, 후보자들간의 갈등과 대립에만 주목해 왔다.

최근 대선과 관련된 기사들만 훑어봐도 그렇다. ‘융단폭격’ ‘전면전 양상’ ‘총공세’ ‘배수의 진’ ‘총력전’ 등, 한반도는 마치 전쟁 중인 듯 하다.

심지어는 ‘칼 빼든 이인제’처럼 섬뜩한 표현을 태연히 기사 제목으로 달고 있는 신문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언론은 왜 이렇게 잔혹하게 묘사할까? 그것은 선거를 긴박하게 묘사해 독자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신문이 더 많이 팔리고, 시청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후보자들은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데 더욱 열중한다. 그래야 언론의 조명을 받기 때문이다.

싸움을 말려야 할 언론이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노무현 후보의 ‘언론국유화 발언’을 둘러싼 일부 언론의 보도를 보면, 아예 언론이 후보자와 직접 대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언론이 선거를 평화적 경쟁이 아닌 잔혹한 전쟁으로 비유하는 것은 독재정권 시절 몸에 밴 비민주적 사고의 탓이기도 하다.

국민의 심판이 두려웠던 군사정권 시절, 언론은 선거를 ‘분열’ ‘혼란’ ‘낭비’등 부정적 언어로 채색하곤 했다.

선거를 통해 수렴되는 여론이나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정책보다는 후보자들간의 경쟁과 술수에 주목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전쟁으로 선거를 묘사했다.

그 결과 한국 언론의 선거보도는 유권자의 선택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왔다.

선거보도가 부실하다 보니 유권자들은 출신지역이 같거나, 생김새나 말투가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후보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정책을 부각시킬 수가 없어 돈과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뒷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국민경선제를 통해 과거의 부패한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보다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과감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한 실정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반민주적 선거보도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배수의 진’을 치고 ‘총공세’를 펼쳐야 전쟁이 결코 아니다.

각 후보자들이 국가의 장래를 헤쳐나갈 정책을 두고 경쟁하는 토론의 장이며, 국민이 모처럼 주인대접을 받는 신나는 잔치판이다.

이제 언론도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이 열망하는 정치개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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