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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봄물처럼 번져가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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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봄물처럼 번져가는 아름다움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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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깡통’을 쓴 동화작가 이상희(42)씨는 원주에 산다.그는 요즘 치악산을 물들이는 봄꽃을 보면서 꽃이야말로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감추지도 아끼지도 않고 보는 이 누구에게나 행복을 나눠주는 꽃을 보며 바로 이런 것이 문화라고 느낀다고 했다.

60, 70년대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천재작가 전혜린(1934~1965)의 미공개 수필이 발굴되었다는 기사(5일자)를 싣는 과정에서 한국일보 문화부는 꽃이 주는 행복감을 80줄의 문화인에게서 발견했다.

이날 신문을 본 독자들은 전혜린의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를 읽으며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풍요롭던 60년대 지식인의 사유가 그대로 드러나는 글의 향연에 흠뻑 빠져보았을 것이다.

원래 전날 저녁 6시쯤 발행되는 한국일보 초판에는 전혜린의 수필은 실리지 않았었다.

그의 미공개 수필이 월간 ‘춤’지에 의해 공개됐다는 사실만이 보도됐을 뿐이었다.

초판 신문을 평가하는 저녁 부장회의에서 수필 원문도 신문에 실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문화부장으로서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춤’지는 그 수필을 발굴한 조동화(80)씨가 어렵사리 꾸려가는 무용전문지라는 사실을 알기에, 전혜린의 수필을 읽고자 하는 이들이 쏟는 관심은 한국일보보다는 ‘춤’지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송PD 출신인 조동화씨는 지금도 무용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다할 수 없는 한국에서 76년 ‘춤’을 시작한 후 한결같은 정열로 이 전문지를 이끌어오고 있었다.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일부 받고는 있지만 지금도 이 잡지를 계속 낼 수 있게 하는 재원은 조동화씨의 아들이 하는 출판사(늘봄)에서 일부가 나온다.

그런만큼 전혜린의 수필 공개로 이 ‘가난한’ 잡지가 조금 더 팔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싶었다.

그러나 수필을 수록하고 싶다는 주위의 채근에 못이겨 담당기자가 출판사로 의견이나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조동화씨는 흔쾌히 실어도 좋다고 했다. 아니 “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가 명쾌했다. “아주 좋은 글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전혜린의 글을 38년만에 공개하면서 조동화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전혜린의 사유를 만끽하기만을 바랐다.

오늘날 문화가 산업이 되면서, 문화는 사실 문화의 얼굴을 잃어버리고 있다.

문화조차 등가대의 재화와 맞교환된다는 산업의 논리가 자리를 잡으면서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케 하는 문화의 진면목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기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화란 좀더 세련된 형태의 정보가공산업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문화란 다만 꽃처럼 물처럼 자연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풍요로움을 더불어 나누며 더욱 풍요로워지자는 것이라는 문화인들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동화작가 이상희씨는 2년째 동네의 어린이집을 찾아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진짜 문화인인 것이다.

서화숙 문화부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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